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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신화에 나오는 리디아의 왕 기게스는 원래 양치기였지만 우연히 반지 한 개를 얻어 그 신통력으로 왕이 된 사람이다. 그는 반지 위에 달린 보석을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왕비를 유혹하고 그녀와 공모하여 왕을 살해한 뒤 왕좌를 차지했다. 이처럼 ‘기게스의 반지’는 소유자에게 양심과 정의를 실종케 한다는 점에서 악(惡)의 도구로 이용될 소지가 크다.
많은 현대인은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 있지 않지만 양심에 시커먼 털이 났기에 부끄러움 없이 악행을 일삼고 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고서도 입만 열면 ‘경애하는 국민’을 찾고, 386간첩 장모씨는 개인빚을 갚기 위해 인민이 줄줄이 아사하는 북한에 3억 원을 요구하는 파렴치의 극을 보였으며, 고관들이 재산을 천문학적으로 증식하면서도 ‘종합부동산세’로 서울 강남인을 응징하려 하고, 주색(酒色)을 즐기는 군 장성들은 심야의 술자리에서 여군들을 ‘기쁨조’로 삼는다.
충북 충주시 탄금대에서 만난 정창진(54·충주시 연수동)씨는 1997년 외지에서 충주를 방문한 이들에게 자전거를 대여하는 ‘양심자전거’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가 호암공원에 배치했던 양심자전거를 하루 만에 분실한 것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3백여 대나 잃었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의 이장은 사재를 털어 주인 없는 ‘양심가게’를 지난 5월에 열었다. 그러나 TV 광고에도 소개된 이 가게에 도난이 잇따르자 이장은 최근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당분간 CCTV로 녹화합니다”란 팻말을 붙였다.
양심이 실종된 사람들은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이 마비됐기에 자신의 행동이 악한 줄 모른다. 다만 예외적으로 그들이 한 가닥 양심의 가책을 받아 회개하는 경우는 있다. 또한 남이 잘못한 것까지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참회하며, 밝고 깨끗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작은 영혼’들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 있기에 양심의 씨앗이 메마르진 않으리라.


이태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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