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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사는 말 그대로 성을 지키는 신을 모신 사당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에 성신사가 있었다. 성신사는 1796년 화성 완공을 앞두고 성을 지키는 성신의 사당을 먼저 지으라는 정조대왕의 명에 따라 그해 9월1일 완공됐다.
“첫째의 할 일은 좋은 날을 점쳐서 먼저 성신묘(城神廟)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 후 때에 맞추어 향을 내리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만세에 흔들리지 않는 터로 정하면 신이나 사람이 함께 화락하고, 나에게 수(壽)를 주며, 나에게 복(福)을 주어, 화성이 명실상부할 것이다.”
이것이 정조대왕께서 성신사 건립을 지시한 이유다. 정조대왕은 성신사 완공 후 성신(城神)에 대한 고유문(告由文)을 직접 작성하기까지 하였다. 성신사는 화성에서 화성행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성신사는 팔달산 회주 도로 중간에 있는 강감찬 장군 동상 자리에 있었다. 이곳이 화성 성내에서 가장 좋은 명당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건물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화성행궁과 함께 파괴하였다. 수원시 학예연구사 김준혁 씨는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을 일차적으로 파괴한 일본인들의 눈에 성신사는 파괴 대상 1호였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이곳을 파괴하여 신사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조선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두려워하여 팔달산의 남쪽인 현재의 수원시민회관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말한다.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 김이환)는 그동안 매년 성신사 고유제를 지내고 복원운동을 펼쳐왔으며 특히 2004년 지표조사때 ‘왕(王)’자가 새겨진 기와 파편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런 꾸준한 노력의 결과 수원시는 올해 안에 성신사를 복원하기로 했다. 기업은행도 건립기금을 쾌척했다.
지난 13일 화성연구회가 마련한 고유제 소지의식때 별안간 비둘기들이 떼로 날아와 행사장을 선회한 것은 아마도 성신의 감응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 행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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