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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정열적인 생명의 노래

 


경기도 과천의 한 전철역 부근에 화가 김병종의 작업실이 있다.
조금 구불거리는 비탈길을 올라가면 약간 둥그런 인상적인 주차 공간과 함께 이국풍의 건물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씩 웃으며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김병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라북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화가 김병종의 어린 시절의 꿈은 문학 소년이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으며 남다른 감수성과 순수함을 지닌 아이였다.
“책을 무척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었죠. 거의 매일 매일 책 속에 묻혀 살았던 것 같아요. 아마추어 문인인 친구 누나나 형을 통해 아주 많은 책을 볼 수 있었어요.” 그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속에 묻혀서 보낸 것이다. 이때 그는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까라마조프 형제들’, ‘금병매’ 등과 같은 책들을 읽었으며 문학적 수준이 높았다.    
그는 사춘기 무렵에 서울대 병실에 입원하고 싶어 했으며, 첫눈이 내릴 즈음 예쁜 소녀가 꽃을 들고 병실에 찾아오는 소설 같은 상상을 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바람을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간직할 정도로 순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현실이 돼 버리듯, 비록 병실을 찾는 소녀는 없었지만 89년 초겨울 서울대 대학원 재학시절에 연탄가스로 인해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헤매게 되었다.
몇 번의 수술 끝에 이듬해 봄이 돼서야 비로소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얀 시트가 깔린 병상에서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그는 생명과 죽음, 삶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생명의 소중함, 창조주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은 후에 관악산에서 꽃 한 송이를 보며 생명의 신비와 조물주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는 병실에서 죽음과 삶을 넘나들면서 골똘히 생각했던 생명의 존귀함을 ‘생명의 노래’라는 테마로 그렸다. 땅과 하늘, 물고기와 새와 나비가 모두 전능하신 창조주 아래서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을 담아 열정적으로 그렸다.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는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고귀함과 창조주의 사랑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그림을 통해서나마 자연과 생명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김병종의 이 같은 애절한 심정은 ‘생명의 노래’에 이어 ‘바보 예수’로 계속되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거의 이 십년 전에 인사동 어느 지하 전시장 김병종 개인전에서 ‘바보 예수’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었다. 마치 오랜 세월이 지나 첫 사랑을 만난 듯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바보 예수’라는, 경건함과 연민이 어우러진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어휘에 혈기 충만하던 한 젊은 미술이론가는 그만 매료가 되고 만 것이다. ‘바보 예수’라는 인상적인 테마의 네 글자를 몇 번이고 되뇌며, 그 때까지는 김병종과 아직 조우하지 못했던 터라 그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후미진 골목 화랑의 한 벽면에 쓸쓸히 홀로 남은 예수의 모습은 총기 없는 눈으로 조금은 멍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때로는 술 한 잔에 안주 삼아 요리 조리 씹히기도 하고, 때로는 사이비 목사들의 생계를 잇는 수단이 되어버린 만민의 예수…….
김병종이 그린 ‘바보 예수’는 적어도 그런 예수일 것만 같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아마도 ‘바보 예수’란 단어는 삶의 진리와 생명의 힘을 강하게 함축했던 것 같다. 그만큼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는 가슴 깊은 바닥에서부터 솟구치 듯 분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처럼 그림인구가 많은 때일수록 그림에 미쳐야만 화가의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더구나 그 시대를 대표하거나 더 나아가서 역사에 남을 만한 화가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역량 있는 큰 화가는 재주나 감각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품과 학식 그리고 많은 경험을 갖춘 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대문호이자 철학자였던 소식은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만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풍부한 독서량과 공부, 많은 여행을 통한 경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김병종은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림만 그리는 것과는 달리 중국 회화 이론과 동양 이론, 한국 미술사 등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동양회화와 관련된 그의 저서는 그 학문적 관점이 독특하여 주목된다. 그가 쓴 화첩기행 역시 남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화가로서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는 작년 여름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인간의 내면에서 분출되는 원초적 감성에 크게 감화되었다. 정열의 탱고처럼 강렬하고 화려하고 혈기 넘치는 중남미의 색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감흥이었다.
이후 김병종의 그림은 화려하고 강렬하게 변화하였다. 생명의 강렬함이 색과 형으로 담겨지기 시작했다면 과찬일까. 김병종은 여느 화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이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독창적으로 구축한 보기 드문 화가라 할만하다.
예로부터 글과 그림은 하나였기에 철학이 깊은 그림을 그리려면 풍부한 책읽기와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력이 필수였다. 김병종처럼 학문적 깊이를 지닌 화가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림을 의욕적으로 그리면서 문학에 심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또 글 솜씨가 대단하여 서울대 재학 시절에 대학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 후로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도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글은 백해무익’이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 그가 문인이기보다는 화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인간적인 겸손함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화가 김병종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김병종의 그림에는 소박한 듯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꺼리가 있다. 그는 오늘도 정열적인 생명의 노래로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글= 장준석(미술평론가, ‘미술과비평’ 주간)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생명의 신비와 창조주의 위대함에 감탄하다

 


장준석 (46) 평론가는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고 2006년 문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21세기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의 단상’ 등 5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감사와 한국예술학회 편집위원, 계간 미술과비평 편집주간, 한국조형교육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고려대와 동국대, 명지대, 성신여대, 충북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2005대한민국국제환경미술엑스포’,  ‘2006미술과비평선정작가전’의 예술총감독을 역임하고 다수의 기획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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