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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2>-황주리의 미술세계

 

 

밝은 노랑빛… 칙칙한 회색빛… 뿌연 안개빛 감성을 그리는 色의 마술사

화단을 대표할만한 역량을 지닌 작가로 자리를 굳힌 황주리는 우리 일상의 복잡 미묘한 상황을 흥미롭게 표현한다. 많은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화가 황주리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살아 온 인생역정이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삶이란 덧없는 것, 나는 낙을 가지고 산다. 허무하고 지루한 삶에 낙을 주는 게 내 그림이다. 그림은 나를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한다.”

어릴 때부터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혼자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내성적인 기질은 그림 속에 자신의 세계를 무한히 펼치고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그녀가 유치원을 졸업할 즈음에 또래 아이가 “야, 너 벙어리지?”라고 물을 정도로 그녀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고 자기만의 공간과 세계에 익숙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무한한 상상력과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성, 그리고 남다른 관찰력 및 동물이나 사물과 소통할 수 있는 남다른 힘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황주리에게는 사물이나 동물과의 내면에서의 소통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어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달리는 차의 창 밖으로 보이는 우리들의 삶의 자화상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하고, 예전에 언젠가 나에게도 있었을 법한 낯익은 장면들이 새록새록 그려지기도 한다.

하루 종일 그림 속에 묻혀있어야만 나올법한 그녀의 그림들은 우리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삶의 질서와 규격에 머물지 않는 편안한 그림이 바로 황주리의 그림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삶의 이야기를 한보따리 펼쳐 보이는 황주리만의 표현법과 감성은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본능적인 미적 감각을 지닌 타고난 색의 화가라는 점이다.

꿈을 꾸어도 컬러 꿈을 잘 꾼다는 황주리에게는 사람의 느낌을 색으로 구분하는 습성이 있다.

그녀를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밝은 노란색으로 기억되고, 또 어떤 사람은 칙칙한 회색으로 느껴지며, 또 다른 누군가는 종잡을 수 없는 뿌연 안개 빛깔로 기억되기도 한다.

밝은 노란색이나 밝은 초록색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는 또한 속이 말갛게 들여다보이면서 경쾌하고 순수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라도 별도 하늘도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아이 같은 황주리의 마음은 쪽빛에 물든 가을 하늘을 흐르는 은빛 시냇물이라 할만 하다.

“얘, 네 그림은 초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야.” 전시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반가워하며 그녀에게 던진 한 마디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성과 감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지니고 있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삶이든지 그 기질이나 성격 등이 세월에 변색되지 않을 수 없음은 어른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황주리의 그림은 구김이 없는 아이만이 만들 수 있는 인상적인 원색과 기발한 상상력을 지닌 아이 같은 그림이다.

아직도 아이처럼 동안(童顔)인 그녀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회색빛 바탕에 조각조각 나누어진 텀블링 공간 안에 그려진,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으로 빚은 삶의 이야기들, 때로는 화려하게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 밝은 원색의 색들, 만화 같은 그림 이야기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그림으로 담은 황주리의 예술세계는 흥미로우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녀의 그림은 누구나 그릴 것 같으면서도 아무나 그릴 수 없는 미묘한 색감이나 형상을 담고 있다.

또한 깜찍하고 여성스럽고 또 야무지고 당차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그림은 각박하고 힘든 세상사에 한 줄기 오아시스와도 같다.

이러한 황주리의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다양하다.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그림 그려진 안경을 쓰고 다닐 수 있도록 할 순 없냐고 하거나, 맘에 드는 안경테가 하나도 없는데 안경테를 가져오면 그려줄 수 있냐고도 한다.

그녀는 많은 이야기꺼리를 캔버스뿐만 아니라 돌이나 안경알 등에 그린다. 많은 이야기꺼리를 담은 만큼 부담을 느껴야 될 것만 같은 그녀의 그림은 오히려 부담을 훨훨 털어버릴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황주리의 그림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힘은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의문점을 주거나 혹은 색다른 묘미와 감흥을 주기도 한다. 그녀의 그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의 흔적들을 담고 있으며 순수하고 대중적이면서도 전달력이 강하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활동하였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받쳐줄만한 내공의 힘을 지닌 작가는 많지 않다.

황주리는 우리 시대의 삶의 이야기를 독창적인 형상과 언어로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보이 듯 보여준다. 타고난 감각과 예리하고 명료한 그녀만의 시각으로 그려진 그녀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거장 신윤복이나 김홍도가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들의 내면의 삶을 보여주었듯이 황주리 역시 그녀만의 표현법과 현대적 화풍으로 오늘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정갈스럽고 명료한 글 솜씨는 자신의 그림의 화격을 더욱 투명하고 아름답게 한다.

그가 쓴 “세월”이라는 산문집은 마음의 고향을 상실하고 무의미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칼끝처럼 예리하게 헤집고 들어온다. 외롭고 힘들어서 지쳐버린 우리들의 심장에 황금빛 저녁노을의 향수를 잔잔히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황주리의 작품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로 다가온다.

그녀의 예술세계는 삶을 농축한 정갈스런 언어 속에 담긴 예술의 혼과 더불어 하나가 된 맑은 심성을 지닌 아이 같은 그림이다. 오늘도 그녀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만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글= 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1980~1991
이대 미대, 홍대 대학원, 뉴욕대학 대학원 졸업
개인전 25회

2005
갤러리 아트사이드

2003
노화랑(서울)

2001
Washington Square Windows (뉴욕)

2000
선미술상 수상 기념전 (선화랑, 서울)

1996
Sigma Gallery (뉴욕)

1996
진화랑, 진 아트센터 (서울)

1994
art projects international (뉴욕)

1992
Washington Square East Gallery (뉴욕)

1991
art jonction nice (니스, 프랑스)

1990
112 Greene Gallery (뉴욕)
국제전, 단체전 200여회 참가


수상

1986
제 5회 석남 미술상 수상

2000
제 14회 선 미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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