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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객원 논설위원>

도시락은 향수를 자아내는 명사다. 각급학교 학생들은 학교 급식제도가 정착하기 전까지는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에 갔다. IMF라는 혹독한 경제난국을 겪은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직장인들은 가방에 넣어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선거기간 중 승용차나 기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잦다. 알미늄이나 펄프로 만들어진 곽 속에 어머니나 배우자가 정성으로 담아놓은 밥과 반찬엔 깊은 사랑이 베어있다.

하지만 급식비를 낼 형편이 못된 30만 명이나 되는 학생들은 점심을 굶고 있다. 도시락은커녕 한 줄에 천원 하는 김밥을 사먹을 형편도 못되는 노숙자나 장기 실업자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서울의 종로 3가에서 사회단체 요원들이 무료로 밥을 주는 차량 앞에 장사의 진을 친다. 홀로 살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들이나 끼니를 거르는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는 단체와 회사도 있다. 정부가 설정한 ‘사회안전망’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도시 빈민들로서는 도시락은 구명(救命)의 밧줄이다.

무역 규모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지난해 말 현재 1천200만원의 빚을 지고 한 가구가 평균 3천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을 정도로 가계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락이 다시 직장인의 화두(話頭)로 등장하고 있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도시락을 먹는 회사원은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동물’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일본인은 도시락 문화에 정통하다. 적지 않은 일본 주부들은 집에서 흔쾌히 도시락 싸며, 상인들도 도시락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일본의 도시락은 절약과 음식문화의 간소화에 크게 기여했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대신 김밥 한 두 줄로 점심을 때우는 우리나라의 일부 직장인은 일본인보다 더 지독한 절약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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