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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5>-김흥수의 예술세계

우리 시대가 낳은  ‘한국美의 거장’

 

 

 

예술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과는 달리 실험적인 삶을 산다고도 할 수 있다. 스스로가 깨닫지 못할 정도로 흥에 취해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고 그 공간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게 예술가인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보통 사람들이 진짜 예술가의 삶과 정신세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많은 그림 그리는 사람들 중에 필자의 눈에 대단한 화가라고 생각될 만큼 훌륭한 예술가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흔히 그림이 많이 팔리는 작가를 좋은 작가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훌륭한 화가의 기준은 그림이 팔리는 정도가 아니라 예술가적 내면세계와 심지가 얼마만큼 광활하고 실험적인가에 있다. 예술가는 그림의 맛과 멋 그리고 흥을 위하여 자신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미술계에는 과거 일본에서처럼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공모전에서 큰 상을 탄 대부분의 화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채 인정받기도 전에 그림 파는 맛부터 배워버려서, 그림을 손재주만으로 잘 그리고 잘 팔아서 잘 사는, 소위 그림쟁이가 활개치는 시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작가란 눈 앞의 영달만을 바라거나 상업주의에 편승하기보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장인정신으로 작품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을 되새기며 진짜 예술가가 되기 위하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진짜 예술가다운 큰 면모를 지닌 큰 작가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흥수의 예술 정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는 일본의 명문인 동경 예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에 세 시간씩만 자며 그림 공부에 몰두하여 당시 많은 일본인들을 제치고 최고의 성적으로 당당하게 입학하였다.

김흥수는 일본인들에게 지기 싫어했으며 늘 당당하고 뱃심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전달하여 일본인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곤 하였다. 일본이 전쟁의 말미에 학생들을 전장에 동원할 때도 그는 당당하게 “이게 우리나라의 전쟁이냐? 왜 내가 당신들의 전쟁에 나가야 하느냐? 다시 한 번만 또 그런 말을 하면 학교에 불을 질러버릴 거야.”라고 자신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내뱉을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

 

그는 이렇듯 숨김이 없는 직선적인 성격이며 평생 서너 시간만 자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열정적으로 구축한 보기 드문 예술가이다. 거침없는 언행과 불의와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품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술계에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거침없이 투박하게 펼쳐 보이는 김흥수의 인생역정은 한국인의 굳은 심성과 불굴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 준 그야말로 ‘구수한 큰 맛’이라 할만하다. 그만큼 그의 정기와 예술세계는 특별하며 깊이가 있다. 한마디로 김흥수는 한국의 예술과 기질이 무엇인지를 그의 작품과 행동을 통해 보여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이다.

 

그의 이러한 특유의 예술가적인 기질은 온실에서 성장한 몇몇 화가들의 질시와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그는 특유의 당당함과 의지로 자신의 작업세계를 꾸준히 전개시켰다. 그리하여 1970년 중반 한국 근대 이후 미술계에 하모니즘(조형주의)이라는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미술평론가 피엘 레스탈니 등에 의해 인정받은 김흥수의 하모니즘의 예술은 한마디로 음양조형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추상과 구상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예술 속에 조화를 이루는 그의 예술은 구상과 추상이라는 양자가 존재하면서도 그 저변에는 둘의 맥락이 하나로 흐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여인이나 인간의 아름다움이 중심이었고, 그것이 그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뿌리 역할을 하였다.

“누가 내 예술의 모체가 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내 작품의 근본은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을 평생 그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가 특히 여성의 인체에 대해 느끼는 미적 감흥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흥수는 자신의 작품에서의 큰 뿌리는 젊은 여성들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축복이고 특권이다.”

성경에 의하면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자신의 형상을 닮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형상은 외적 형상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김흥수는 여인의 외양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혼까지 형상화한 것이다.

“나는 일생 동안 누드를 많이 그렸지만 단순히 여인의 피부, 누드의 표피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을 지닌 여인의 절실한 감성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내 그림은 인생철학을 담고 있다고 감히 말한다. 한 여성을 통해서 들여다 본 환희와 절망, 허무와 끝없는 욕망, 그것이 나의 예술에 들어있는 독특한 세계이다.”

김흥수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바라보고 그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진지함을 지닌 작가로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예술성은 그가 화가로 첫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하모니즘을 선언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

하모니즘이란 동양의 음양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추상과 구상을 하나의 화면 구조 안에 병행시키는 작업으로서 김흥수가 세계 최초로 추구한 예술세계이다. 하모니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의 열정이 더해질수록 인간의 내면세계가 더욱 주관적으로 표현되면서 다른 한쪽 면에는 인간의 생명력이 결정체로 남은 추상이 잔존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림의 어느 면에는 비정형화 된 또 다른 추상적인 형과 색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마치 시골 여인의 소박한 향기가 함축되어 추상적인 형과 아름다운 색으로만 나타나듯이 말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선명한 생명의 축제를 담은 한국적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기질처럼 강하고 뚜렷하고 대담한 색감은 하모니즘의 또 하나의 극치를 보여준다. 선명한 자연 환경을 모태로 한 한국인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답고 대담한 형과 색을 담은 생명의 축제이자 환희라 할 수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의 김흥수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하루 한 시간 이상씩 헬스를 해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남달리 건강한 몸을 지녔고 어려서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이 대단하였다. 이는 그가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다가 얼마 전에 작고한 백남준이 일본과 미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였다면, 김흥수는 우리 한국문화의 토양에서 성장하여 투박한 한국의 사발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가히 우리 시대가 낳은 예술가의 백미라 할 만하다. 황량한 벌판을 달리는 야생마와도 같이 예술 혼을 불태우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김흥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젊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1919년 11월 17일 출생
현 국립 동경 예술대학 졸업, 파리 유학
미국 필라델피아 무어대학(Moore Arts College) 초빙교수
워싱턴 DC. I.M.F. 미술관《調型主義宣言展》
조선일보 미술관 김흥수 음양 조형주의 미술(Harmonism Art) 선언 20주년기념 초대전
국립 파리뤽상브르그 미술관 개인초대전(프랑스 파리)
국립 푸슈킨 미술관 개인 초대전 (모스크바)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 개인 초대전 (상트페테르부르크)
라라 뱅시 화랑 체불 제1회 개인전 살롱 도톤 회원 선출
동경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김흥수,히라야마 이꾸오 2인전

수상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金冠文化勳章)
문화훈장 옥관장(玉冠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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