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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6>-이숙자의 예술세계

이브의 보리밭 에서 듣는 한국의 노래

 

대학시절 국내 최고 권위 國展
열다섯번 도전 끝 ‘대상’ 영예


몇 주 전부터 주말이면 국내의 한 메인 국영방송에서 해외의 주요 미술의 상황과 미술 시장의 흐름을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꽤 흥미롭게 시청하였다. 마지막 5부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상품성과 전에 없이 호황을 누리는 작품 판매에 세계의 큰 화상들이 몰리는 내용이었다.

그와 더불어, 중국 대가들의 높은 작품 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낮은 가격을 받으며 진출한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모습도 방영되어 좀 씁쓸했다. 중국의 작고한 화가들인 제백석이나 장대천, 부포석 등이 현재 중국 미술 시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그들과 견줄만한 박수근이나 이중섭, 박생광, 오지호, 백남준 등의 훌륭한 화가가 있다. 문화 미술 마케팅에 대한 인식 부족 및 경제력의 미약함 등으로 좋은 작가들이 세계 시장에서 푸대접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기대되는 작가들 중에 한 사람으로 보리밭의 작가 이숙자를 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필자는 백두산을 테마로 한 이숙자의 개인전을 보고 의아해했다. 작품이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이룩한 대작이라는 것과 큰 구상작품이면서도 채색의 힘을 잃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숙자는 서울의 중심가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6.25를 만나 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충북 옥천의 조그마한 마을에 내려가게 되었다. 거기서 몇 년 동안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나물을 캐거나 개똥벌레를 잡아 도깨비놀이를 하면서 보냈다. 그녀는 늘 밝고 희망차고 자신감에 넘쳐있었으며, 남다른 감성과 관찰력을 지닌 아이였다. 동네의 소들을 보면서 소의 몸집이나 특징, 소에게서 풍겨지는 느낌 등을 인간과 결부시킬 줄 알았다.

“어릴 때였지만 그 때도 소를 인격체로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심한 듯한 큰 눈망울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와 눈을 맞추고 있노라면 나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 같았어요. ……우리 집 소는 몸집이 크고 얼굴이 갸름했으며 온순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행동과 똑같다고 생각됐어요. 작은집 황소는 뿔이 곧고 사나워 나에게 뿔을 들이대곤 해서 무서웠는데, 오촌 당숙의 모습과 꼭 닮았었답니다. 정순네 소도 정순 아버지를 닮아 날씬하고 잘생겼었죠.”

이렇듯 이숙자의 어린 시절은 생동감 있고 풍요로웠으며 늘 꿈처럼 아름답고 포근하였다.

숙명여자중학교에 다니던 소녀시절에도 밝고 희망차고 자신감이 넘쳐흐르던 이숙자는 “원대한 이상을 품자. 높은 나뭇가지를 겨냥한 화살보다 태양을 겨냥한 화살이 높이 난다.”라는 문구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을 정도로 자신에 대해 철저하였다.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국전에, 대상을 받을 때까지 열다섯 번씩이나 출품할 정도로 인내력이 대단하였다. 홍익대 재학 시절에는 “방학을 맞아 텅 빈 작업실에서 혼자 자정 넘어서까지 작업에 몰두하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해 갑자기 들어 온 수위아저씨를 보고 놀라 기절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녀는 강인하고 쉼 없이 노력하는 화가이다. “천재는 노력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어느 날 보리밭을 만났지요. 그 보리밭의 묘한 감동과 함께 저 보리밭을 그리면 나의 노력과 시간을 실컷 그림에다 쏟아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숙자의 보리밭 그림은 많은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녀는 스케치해둔 보리밭 화판에다 파리 몸뚱이만한 보리 낟알을 만들기 위해 연황토 물감을 세필에 묻혀 끝이 뾰쪽하며 위쪽으로 휘어지도록 낟알 하나하나를 그려나갔다. 화판에 1500개 이상의 보리 이삭이 있는데, 한 이삭에 30개 정도의 보리 낟알이 필요하므로, 모두 4만 5천여 개의 보리 낟알을 그렸으며, 이것을 7~8회씩 반복했다. 게다가 보리 낟알의 3배 정도인 15만여 개의 보리 수염을 그려야 겨우 기본 작업이 이루어졌다. 보리 낟알이 우둘투둘하므로 손바닥이 닳아 빨갛게 피가 맺히면 손바닥에 투명테이프를 여러 겹 댄 상태로 그림을 그렸고, 어깨를 비롯한 온몸에 통증이 올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작품과 싸워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쪽 어깨의 근육이 다른 쪽보다 더 발달하여 두둑하고 높아졌다.

 

이숙자는 호남의 땅 끝에서부터 강원도 철원까지 두루 다니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보리밭과 그 주변의 분위기를 철저히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보리가 지니는 본질적인 생명력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엔 보리를 관찰하는 그녀를 수상히 여긴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는 곤혹을 치루기도 하였다.

그의 보리밭 그림은 자연의 서정 및 한과 끈질긴 자생력이라는 한국적인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함께 등장하는 이브의 의미도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겪는 여성들의 갖가지 어려움이 함축되어 아름답게 형상화 되었다.

“그래서 나의 작품 속의 이브는 부드럽고 우아하고 상식적인 표현으로서의 여성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여성의 숙명을 거부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의 이성적인, 그러면서도 고독한 모습을 담고 있어요.”

11남매의 맏며느리로 살아온 이숙자의 화가로서의 삶은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이 아니라 저항적이고 고독한 삶이라 하겠다.

이숙자의 예술세계에서 볼 수 있는 강인함은 오히려 여성으로서의 여린 심성과 미적 순수함을 동반하고 있다. 그녀는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선정한 이브의 모델에 대해서도, “내 앞에 알몸으로 벗은 아름다운 여성의 헌신적인 포즈 앞에서 나는 송구스러움과 더불어 그녀의 고뇌를 같이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복한 표정의 여성으로 그려낼 수 있겠습니까.” 라고 솔직히 말한다. 또한 황금색 보리밭을 보고 “마치 황금빛 왕관을 쓴 멋진 왕자님을 만난 것 같았다.”라고 회상하는 작가는 동화의 세계 같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문장가였던 이탁오는 ‘훌륭한 예술을 위해서는 아이 같은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년을 눈앞에 둔 그녀가 아이 같은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은 경이로운 일이다.

보리밭에 발가벗고 누워있거나 미묘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이브의 모습을 선정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브와 보리밭은 이숙자의 굽힐 줄 모르는 의지의 예술세계와 화가로서의 열정적인 삶이 빚어낸 소중한 산물로서, 거기에는 우리들의 삶의 애환과 향수가 그림자처럼 스며있다. 이숙자의 보리밭은 그녀의 고운 심성과 예리한 관찰력 및 각고의 노력이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노래인 것이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사진=유연준

약력
이숙자(李淑子) 호: 지향(芝鄕)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수상
1973~ 국·내외 개인전 21회
1963~1980 국전 입선 12회, 특선 3회
1978 제 1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1980 제 29회 국전 대상
제 3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1994 제 5회 석주 미술상
2003 DE COREE EN CHAMPAGNE(Reims, FRANCE)
샹파뉴에서, 한국전
2004 COMPARAISONS(Paris, FRANCE) 비교전
제 1회 국제 현대미술제 (서울 무역전시장)
현대미술 정상 31인 초대전 (정동 경향갤러리)
한·케냐 수교 40주년 기념 오늘의 한국미술展
(나이로비 미술관, 케냐)
2005 INDIA-KOREA Contemporary Art Exhibition
한 · 인 현대미술展
(Rabindra Bharan G. NewDelhi, INDIA)
뉴욕 한국문화원 초대 ‘2005 한국미의 발현展’
(뉴욕 한국문화원 전시실)
SALON 2005 SNBA (CARROUSEL DULOUVRE)
까르젤 , 루브르
2006 GRAND PALAIS COMPARAISONS 2006 (PARIS, FRANCE)
중앙 ART GALLERY 개관전 (L.A, U.S.A)
2006 PARIS FRANCE 이숙자개인展 (EVERARTS GALLERY, PARIS) 외 350여회 출품

심사위원

 

국전추천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역임, MBC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춘추회미술대전, 미술세계대상전, 무등미술대전 단원 미술대전 등 심사위원 역임

작품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선재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홍익대학교 박
물관, 원자력연구소, 인터콘티넨탈호텔, 대한항공, 주택공사, L.G 본사사옥 등

 

現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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