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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객원 논설위원>

20세기 최고의 시인이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T. S. 엘리어트는 1922년 ‘황무지(The Waste Land)’란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노래했다. 그는 이 연의 바로 다음에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고 술회한다. 엘리어트의 시는 만물이 봄에 강렬한 생명력을 피워내므로 잔인할 정도로 황홀하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대지는 음력으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동지(冬至)에 사실상 봄으로 들어선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밀어내며 얼어붙은 땅 속에서 봄기운은 서서히 움튼다. 가녀린 식물들까지 땅속에 잠긴 뿌리를 요동치며 물과 영양소를 빨아올려 위로 공급한다. 대지는 봄이 무르익음에 따라 약동하는 생명체로 가득 찬다. 봄은 모든 생물이 소리 없는 기(氣)의 전쟁을 치르는 계절이다.

사람도 봄이 오면 유난히 졸린다. 흔히 춘곤증(春困症)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남녀노소에게 공통된다. 특히 점심시간 이후나 날씨가 화창한 날엔 이 증세가 더 심하다. 의사들은 춘곤증을 겨울에 비해 기온이 올라가면 근육의 긴장이 풀려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람은 여름엔 더 덥지만 하곤증(夏困症)이란 말을 쓰진 않는다. 우리가 봄에 나른해지는 것은 여름에 졸리는 것과 다르다.

춘곤증은 T. S. 엘리어트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잔인할 정도로 생명의 힘이 꿈틀대는 ‘가장 잔인한 달’인 4월에 몸부림치며 생명의 기를 솟구치는 다른 생명체에 비해 인간이 느슨하게 움직이면서 들꽃과 들풀들을 완상하거나 포근한 봄볕에 눈동자를 사르르 내리감는 습관에서 오는 이완현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좋은 계절에 ‘잠 앞에 장사 없다’는 말마따나 심하게 졸리면 짧게 자고 일어나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후 심기일전하여 만물과 더불어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를 협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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