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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객원 논설위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은 당대에 명예와 부를 누렸지만 일제시대가 36년 만에 끝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한 채 풀이 죽었을 것이며, 반일 구국투사들은 당대에 핍박과 빈곤을 면하지 못했지만 36년 만에 조국이 해방되자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이 위험 속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가난에 찌든 사이에 반역자와 그 후손들은 풍족한 생활을 했다.

암흑시기에 독립운동가들의 고통은 얼마나 심했던가?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은 풍찬노숙을 일삼고 도토리 열매를 따먹으며 구국의 일념으로 투쟁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비적(匪賊)과 다름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상해와 중경에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요인들은 낡은 건물에 세로 들어 살면서 상황이 급할 때는 벌판으로 뛰어나가 천막으로 하늘만 가린 곳에서 용변을 보고는 했다. 이런 분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고통을 원동력으로 하여 우리나라는 해방되었다.

해방 직후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여 민족정기를 살리고자 조직된 반민특위는 이승만 대통령 휘하의 권력자들에 의해 탄압받고 해체되고 말았다. 그것을 신호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을 활개를 치며 권력의 반열에 진입했고, 매국 내지는 부역의 대가로 획득한 재산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보의 기치를 내건 여권은 보수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5년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근거해 지난해 7월 발족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2일 이완용과 그 아들 병길, 송병준과 그 아들 종헌, 고희경, 권중현과 그 아들 태환, 이재극, 조중응 등 9명이 보유한 154필지 공시지가 36억원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을 내렸다. 국가귀속이 결정된 친일재산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를 위한 지원금,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에 쓰이게 된다. 친일파 재산의 국가귀속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의 확립이 때를 놓치면 얼마나 힘든가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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