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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역지사지’ 지혜가 필요할 때

도의원·공무원 싸움 씁쓸
선진국 토론정치 본받아야

 

엊그제 마트에 갈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아이의 표정이 굳어져 있다. 동생과 먹는 것을 두고 티격태격하고 난 후다. 엄마로부터 꾸중을 들은 터라 말과 표정이 없다. 톡톡히 삐친 모양이다.

이 때 엄마가 말문을 연다. “네가 엄마의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하겠니?” “음…꾸중을 하기전에 먼저 누가 잘못했는지 물어보겠어.” 동생편만 든 엄마의 태도가 무척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후에도 몇마디의 대화가 오갔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얼굴엔 꺼리낌이 없다.

최근 지방자치의 전당인 경기도의회가 시끄럽다. 예산결산위원회의 추경예산 심의과정에서 일어난 ‘명패 투척’과 도 공무원의 ‘욕설’ 화답이 발단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보도에 따르면 혁신유공자 해외연수와 관련한 예산운용의 적정성 여부와 공무원 출입카드 발급 과정의 문제를 둘러싼 질의답변이 출발이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도의회는 도민이 부여한 행정감시 기능을, 집행부는 충실한 답변을 통해 동의를 구하는 관례적인 절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한쪽은 명패를 던졌고, 다른 한쪽은 ‘XX 공무원은 사람도 아니냐”며 맞받았다.

이 사태는 도의회와 공무원노조측간의 싸움으로 옮아붙은 형국이다. 실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없었던 탓일성 싶다. ‘역지사지’는 대화와 토론이 근간이다.

단언컨대 양측 모두 잘한게 없다. 도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도의회는 주민대표기관로서의 지위를 차버린 꼴이다. 도의회는 지방정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결기관이다. 자치조례의 제정기능 등을 담당하는 입법기관으로서의 지위도 가진다. 이 같은 지위와 권한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뽑아준 도민에 대한 무한책임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도민의 입장을 대변했어야 옳았다. 설사 분통이 터지더라도 참고 또 참아야 하는것이 도민대표 기관이 걸어야 할 길이다. 그래야만 행정감시기관으로서의 권능도 살아난다.

공무원 역시 도민들의 공복봉사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음에 틀림없다. 헌법 제7조 1항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해놓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공무원의 본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주민대표기관인 도의원을 향한 행동이 적절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의 이런 일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도의원의 행동이 적절한지 아닌지는 도민들이 판단하고 평가하면 된다.

양측은 아직도 자기 생각뿐이다. 싸움 양상을 보면 이른바 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빼닮았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양측 모두 기자회견을 자청, ‘네탓 공방’이다. 예결위측은 “사건이 발생한데에는 거짓 답변으로 일관하면서도 사과하지 않은 도 집행부에 있다”고 했고, 노조측은 “집행부 간부 공무원을 향해 명패를 던진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모두들 자기 생각만 얘기한다. 남의 말은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는다. 제각기 제 말만 하다 보니 싸움은 끝날 것 같지 않다. 살림살이를 다루는 예산 심의가 잘 될리가 만무하다.

선진 민주주의 제도의 뿌리가 깊을 수록 토론문화가 발전해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는 토론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법적 주요 사안을 결정했다. 현재 아카데미 토론방식의 원류로 알려진 영국의회의 토론문화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카데미 토론 방식을 현재의 수준으로 발전시킨 미국의 토론문화는 19세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헌데 경기도 정치세계에서 토론정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무릇 지방자치 시행 10년이 지났으나 변화가 없다. 대화와 토론은 없고 ‘말싸움’만 난무한다. 이 세계에서는 21세기란 말조차 무척 낯설다. 선진국의 토론정치 문화를 부럽게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도민들의 속은 누가 달래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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