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조의 희말라야 여행기<13>
김필조의 희말라야 여행기<13>
  • 경기신문
  • 승인 2007.05.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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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길목을 문득 돌아보니 히말라야 꽃이 나를 반긴다 - 수채화 마을‘루클라’

* 야크와 네팔의 지게 - 발걸음은 경쾌한 방울소리에 실렸다.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네시 반까지 줄곧 걸었다. 그래도 남체까지 밖에 오지 못했다. 팍딩이나 루클라까지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길은 내려가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간간이 길가의 꽃이며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오를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꽃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내려가는 길목에 방을 잡고 잠시 쉬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길에 내놓고 파는 야크털 제품도 한동안 구경했다. 투박하지만 등산객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들이다. 카트만두 보다 싸서 하나 살까하는 생각이 든다. 현지인들을 상대하는 장터도 구경했다.

도시의 공장에서 만든 건지 인도에서 수입을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싸구려 티셔츠와 운동화가 대부분 이었다. 한 무리의 야크가 지나가는 바람에 길을 비켰더니 젊은 세르파족 여인이 회초리 하나로 능숙하게 소몰이를 한다. 등에 진 것 없이 돌아가는 길이라 야크의 발걸음이 경쾌한 방울소리에 실렸다.

짧은 순간 사람들이 모두 야크에게 길을 내어 준다. 내일 오전은 이곳을 떠나 오를 때처럼 토요장터가 열리는 날이다.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늘 걸음대로라면 저녁에나 루클라에 도착 할 텐데….

▲ 팔자 나름이야. 카트만두에서 만난 소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가진 야크가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다.
야크를 이용해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노새나 소를 이용한 것과 다를 수 없는 모습이다. 헌데 사람이 짐을 나르는 모습은 우리의 지게 사용과는 너무 다르다. 어깨에 멜빵을 걸치고 등에 지는 것이 아니고, 이 곳 사람들은 이마에 멜빵을 대고 등짐을 운반한다.

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고 다닌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지게처럼 다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밑이 좁은 망태기 모양이거나 우리의 지게 위에 얹던 바소거리 모양과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좁고 긴데 넓적한 줄을 이마에 대어 걸친다. 쉬어 가느라 세울 때는 작대기를 받친다. 작대기도 우리의 지게를 받치던 것처럼 가늘고 긴 게 아니라 짧고 투박하다.

워낙 무겁게 메고 다녀서 이마에 굳은살이 박이고 목이 부러지지 않을지 걱정스러운데, 여인들이나 아이들도 신기하게 잘 다닌다. 어려서부터 히말라야의 산중에서 살면서 힘든 밭일과 땔감 구하는 일을 해서 단련이 되었나 보다. 세워 둔 것을 시험 삼아 이마로 들어보았더니 도저히 들 수 없는 무게다.

* 수채화 속으로 - 이별하는 마음은 뒷걸음으로 걷는다.

▲ 하산 길의 야생화. 일일이 다 눈에 담기도 힘든 예쁜 야생화가 산길 곳곳에 피었다.
토요일 오전장을 돌아보니 별로 살만한 건 없었다. 스웨터와 소품 몇 가지를 사서 내려가기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남체로 모여들고 있다. 길은 온통 야크가 메우고 있어 비켜가야 했다. 남체 아래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포터들이 들르는 식당에서 든 것 없이 담백한 빵(도너츠)을 참 맛있게 먹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갓 구워내어서인지 입안이 부드럽다. 마당에는 장날이라 팔러 온 닭과 산양들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산양은 다리를 묶고 입을 막아 ‘메에’ 하고 울지 못하게 해 놨다. 이것저것 뜯어 먹어서 입을 막아 놓은 걸까?

서둘러 걸어 루클라엘 왔다. 내려오는 길에 흙장난 하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옛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하고, 마을을 지나며 울타리에 피어난 꽃들을 눈에 담기도 했다. 오를 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간밤에 비라도 내린 건지 길 한쪽이 무너져 내린 위험한 곳이 있어 조심해야 했다.

▲ 허걱, 자기보다 큰 지게를. 어린 소년이 지게(남로)를 뉘고 쉬고 있다.
물가에서 잠시 쉬며 히말라야에서 자라는 풀을 눈여겨 보았다. 썩은 나무둥치를 휘감은 초록의 억센 기운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제 돌 하나 풀 한포기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돌아왔다. 허름한 식당에 들렀더니 어리고 예쁜 고양이가 불 때는 아궁이 앞에서 졸고 있다. 한 편에는 검은 흙을 두른 감자가 수북이 쌓여 있고, 탁자 밑에도 차곡하다. 맛있어 뵈는 야채들도 한쪽 옆에 놓여있다.

손을 씻으려고 뒷문을 여니 밭이다. 야채는 저기서 길러 낸 모양이다. 가을색이다. 맞은편에서는 두 여인이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맨발로 밭을 갈고 있다. 갈아엎고 있는 짙은 색 흙이 보드랍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루클라에 와서도 오를 때 알지 못했던 걸 찾았다. 초입에서부터 공항까지 바닥에 모두 돌이 깔려 있다. 흔하디흔한 돌을 잘라서 보도블럭을 만들었는데 그러고 보면 남체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질 때가 되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남체에서부터 일주일간 짐을 들어주고 의지가 되었던 비까스와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길 위에 서서 잠시 짐을 내리고 잔금을 주면서, 신발 사라고 500루피를 더 얹었다. 남체에서 운동화를 만지작거리던 모습이 기억에 남은 탓이다. 짝퉁 고글도 가지라 주었더니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헤어지며 손 인사를 하니 찡하다. 서로 서운해 하며 뒷걸음질로 걷다가 롯지로 들어왔다

.돌 하나, 풀 한포기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돌아왔다… 두 여인이 맨발로 갈고 있는 밭의 짙은 색 흙이 보드랍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 매콤한 사모사와 콩 스프, 블랙티. 갓 튀겨 낸 사모사의 매콤한 맛이 좋아 여러 개를 먹었다.
▶▶▶ 은둔의 왕국 무스탕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왕국이면서 히말라야에 둘러싸여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곳, 무스탕 왕국은 히말라야의 다울라기리와 티벳고원 사이의 해발 4,000미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는 1만 5천 여 명으로 일찍이 ‘로’왕국으로 불렸고 수도는 ‘만탕’이다. ‘무스탕’이라는 이름은 `만탕’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포카라에서 좀솜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도보로 3박 4일을 걸어야 한다. 중간에 숙식을 해결할 곳이 없고,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네팔 자치령이지만 역사, 문화는 티벳에 가깝고 아직도 16세기 티벳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수도 ‘만탕’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쪽에는 4개의 절(참파라캉, 투크첸곰파, 쵸디곰파, 님파곰파)과 왕궁이 있다.

왕궁은 4층짜리 건축으로 라사 출신의 왕과 왕족이 살고 있고 만탕의 남서에는 그리림포체의 흔적이 비교적 큰 가르곰파가 있다. ‘로’를 향해 가는 길은 거의 나무가 없는 불모지를 지난다. 오후에는 늘 강한 바람이 몰아치며 밤에는 잠잠해진다.

네팔에서 가장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이지만, 겨울에는 눈이 30~40cm 쌓일 때도 있다. 바람에 풍화된 황갈색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티벳 고원과 비슷하며, 언덕은 거대한 붉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마을과 마을은 여러 시간 떨어져 있다.

‘로(무스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와 싸지 않은 별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안나푸르나 입산허가비도 필요하다. 단,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하고 여행사를 통한 단체참여만 가능.

■ 자료도움: 네팔짱 (www.nepal-jjang.com) / ‘은둔의 왕국 무스탕’ 사진=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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