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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15>-최석운의 예술세계

 

화가 최석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만한 정말 재미있는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에선 구수한 된장국처럼 진한 삶의 이야기가 노래하듯 술술 흘러나오는 듯하다.

경기도 양평의 한 전원에 자리 잡은 최석운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작가를 닮은 듯한 그림들이 방긋이 웃고 있다. 씩씩하고 잘 생긴 녀석이나, 작가처럼 넉넉하게 생긴 녀석이나, 별스럽게 생긴 녀석 등은 모두 풋풋한 사람 냄새를 풍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그림들을 그릴 수 있고, 그런 그림들과 함께 생활하는 최석운은 행복한 사람이다. 복돼지해인 올해에는 별의별 표정에 갖가지 모습을 한 돼지들이 그의 손에서 여러 마리 태어났다. 힘들고 복잡한 세상사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이 될 수 있는 이 돼지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팔려나갔다.

 

최석운의 고향인 부산의 을숙도는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주 눌러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감칠맛이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들이 마음으로 보고 느껴왔던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국내 경제가 좋지 않았던 90년 초에 가난한 예술가였던 그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며 술 몇 잔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안주거리처럼 풍성하다. 그가 대학 진학 이전에 목공소에서 일을 하며 느꼈던 것을 형상화한 ‘목공소’나, 목욕탕에서 그 순간이라도 모든 피곤함을 훌훌 벗어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휴식’ 등은 우리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처럼 최석운의 작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들이면서도 보는 이의 마음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부산에서 갓 올라와 월세금을 내기도 벅찰 무렵, 경기도 양평에 그림 그릴 수 있는 공간을 겨우 확보하였다. 최석운은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그곳에서 몇 년 동안 그림만을 그렸다.

“처음엔 그림이 좋아서, 많은 고생을 하며 저절로 찾아든 곳이 이곳 양평 고송리예요. 저에게는 그림이 완전히 생존의 수단이었어요. 지금까지 저는 살기 위하여 전시를 했죠. 그림을 팔아 밥 먹고 살기 위해…. 처음엔 그림이 재미있어서 그렸는데 장난이 아니었어요.

 

남들처럼 여유가 있는 게 아니었고 절박한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죠.” 작가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생계를 잇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민중 미술을 하였지만, 작가적 양심 때문에 부담감을 갖게 되었고, 그런 류의 그림은 자신의 평생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전기도, 하찮은 볼펜도 누군가를 위해 쓸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그림은 자기네들끼리만 낄낄거릴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 그림만큼은 많은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다리가 간지러워 깨어나면서, 자신의 다리 위로 기어 올라오는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순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반사된 날개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색을 발견하고는, 바퀴벌레와 일주일간을 함께하며 색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였다.

최석운은 바퀴벌레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이 바퀴벌레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좋아하고 웃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이상했어요. 그리고 곧 아! 이거다 싶었죠. 나도 원래 낙천적인데 사람들을 그림으로 웃겨봐야겠다 생각했죠.”

 

 

 

최석운의 눈은 모든 걸 가볍게 지나치지 않고 예리하며 섬세하다. 그는 어느 날 전시장 오프닝 장소에서 떡을 먹는 한 여자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겉으론 떡을 안 먹는 것처럼 은밀히 행동하는 그 여자의 모습이 너무도 우스꽝스럽고 인상적이었다. 그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그 느낌을 스케치북에 담아두었다.

최석운의 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사람이든 돼지든 개든 다른 잡동사니든 모두 그 표정에 생동감이 넘친다. 그림에 담겨있는 문학적인 성향만큼이나 감각적이면서도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작가 최석운의 소탈하고 거리낌 없는 언행은 그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편안한 즐거움을 준다.

“어느 날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기분이 좋아 의자 위에 올라갔어요. 그리고 흔들며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재꼈죠. 술자리에서 제 목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장내에서는 앙코르가 터졌고, 두어 곡을 더 불렀죠.”

최석운은 오늘도 그림을 즐기면서,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그림에 대해 고민한다. 그의 풋풋한 인간미와 작품에 대한 타고난 감각 및 표현력은 그가 작가를 넘어 한사람의 이야기꾼임을 말해준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거기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해학이 넘친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었든 간에 그의 작품에는 살아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는 쪽배를 타고 한없이 흘러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견공의 모습을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평범하지만 엉뚱한 발상에서부터 시작되는 최석운의 작품은 마치 작가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시골동네에서 마을사람들이, 그가 화가이기보다는 만화가인 줄 알았을 정도로 이야기꺼리를 재미있게 담아내는 작가는 더 좋은 그림을 위하여 오늘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어느 땐 아무 것도 배운 것 없는 사람처럼 말을 쏟아놓기도 하는 작가와 그의 그림은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복(福)자가 써진 대접 안에 장난기가 발동한 눈빛으로 요염하게 엎드려 있는 돼지의 모습은 마치 기발한 상상력을 지니며 어느 쪽으로 또 일을 벌여볼까를 궁리하는 최석운과도 같다.

돼지의 빛나는 눈과 상상을 초월한 포즈는 장난기 어린 한 화가의 타고난 끼처럼 느껴진다. 그가 그린 돼지는 분명 돼지이지만, 마치 돼지 탈을 쓴 인간처럼 돼지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작가만이 지니는 예술적 끼가 요동친다. ■ 글= 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B F)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졸업(M F)

[개인전]
2007 인사아트센터 (서울)
통인옥션갤러리 (서울)
2005 가람화랑 (서울)
2004 거제문화예술회관 미술관
2003 인더 갤러리 (양평)
공간화랑 (부산)
2002 가람화랑 (서울)
2001 공간화랑 (부산)
동원화랑 (대구)
2000 샘터화랑 (서울)
1998 포스코 미술관
1997 샘터화랑 (서울)
1996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1995 샘터화랑 (서울)
갤러리 소헌 (대구)
1994 샘터화랑 (서울)
Seoul Art Fair (예술의 전당)
공간화랑 (부산)
1993 금호 미술관 (서울)
L.A Art Fair ,컨벤션 센터 (L.A)
1991 한선 갤러리 (서울)
갤러리 누보 (부산)
1990 갤러리 삼덕 (대구)
사인화랑 (부산)

[주요개인전]
2007 도큐멘타 부산III 일상의 역사, 부산시립미술관
2006 미술과 놀이-펀스터즈, 예술의전당미술관, 서울 어울림미술관 (고양)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
가지않은길-그림, 문학을 그리다
북촌미술관, 문화일보갤러리
국민일보갤러리 개관7인초대전,국민일보갤러리 (서울)
2005 개관15주년 기념 초대전, 금호미술관
세계문명탐방-화가들이 본 앙코르왓트전, 거제문화예술회관 미술관
양동에서 몽골까지,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 양평미술관
2004 베이징 아트페어, 북경 (중국)
2003 동화속의 미술여행. 갤러리 현대, 두아트 갤러리
일상이 담긴 미술, 대전시립미술관
2002 미술여행3-한국미술의 자화상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01 한국미술의 단면-빛이 다른 한편에서
까로스 국제 현대 미술센터 (프랑스)
2000 새 천년 3.24전, 서울시립 미술관
일상, 삶 미술전, 대전 시립 미술관
1999 블라디 보스톡 아트에타쥬 갤러리 초대전 (러시아), CS Fine Art Print Show (L.A Artcore Center)
1998 맬버른 아트 페어, 호주 멜버른 로얄미술전시관
1997 한국 화랑 미술제, 예술의전당 미술관
1996 SIAF서울국제 미술제 특별전-21세기를 향한 비전 (COEX)
1995 한국화랑 미술제 10주년 기념 특별전, 예술의전당
1994 한국화랑미술제, 예술의전당 미술관
1993 L.A 아트 페어, 로스엔젤레스 컨벤션센터
1992 구상 회화의 재조명-풍자화, 그 해석과 비판의 소리전, 현대아트갤러리
1990 젊은 시각-내일에의 제안전, 예술의전당 미술관 등 다수기획 초대전 참가.

[작품소장]
경기도미술관, 부산시립 미술관, 대전시립 미술관, 경남도립 미술관, 토탈 미술관, 금호 미술관, 기당 미술관, 거제시청 등

[수상]
2007 제 6회 윤명희 미술상
1992 제 3회 부산청년 미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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