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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객원 논설위원>

서울 종로에 있는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 및 공자를 모신 유교사당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어느 나라 수도에도 이렇게 장엄하고 정제된 건축물이 사당으로 서있는 경우는 드물다. 5만6천여 평의 경내를 가득 메운 울창한 숲 속에 들어선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및 공신당, 칠사당 등이 포함돼 있다.

종묘를 세계 문화유산 중에서 돋보이게 하는 점은 아름다운 숲과 깔끔하게 정돈된 옛 건축물 사이로 뭇 새들이 우짖으며 고운 자연의 소리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점 말고도 거기서 행하는 제례 및 제례음악이 세계 무형유산으로 별도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뿌리를 소홀히 하고, 현실적이고 즉물적인 이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이 역사의 고향을 찾아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종묘는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종묘 앞에는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를 살려주세요’라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종묘가 죽어가고 있단 말인가? 사실 종묘는 서울시가 매일 수천 명의 노인들이 점령하고 유락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했던 종로의 탑골공원을 성역화의 차원에서 정비하면서 노인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몰려 노인들의 새로운 ‘해방구’로 변모하고 있다. 종묘 앞 1만여 평의 종묘공원은 이미 고성과 무질서, 놀음과 술판, 쓰레기 투기장, 노인 성매매의 메카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노인들 틈새로 ‘바카스 아줌마’란 여성들이 음료수와 술을 들고 다니면서 노인들과 성매매를 교섭하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띈다.

우리가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 부근을 이렇게 어지럽히면 얼굴에 스스로 오물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5일 대책회의를 열고 “탈선과 무질서의 현장인 종묘공원을 시민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2008년까지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힌 것은 만시지탄을 자아내긴 하지만 옳은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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