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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조의 희말라야 여행기<16>

땅을 쪼개고 솟은 태양과 숨겨진 세상事를 나누다 - 걸어서 네팔속으로…

* 나갈코트로 떠나는 도보여행- 저녁 구름에 쌓인 태양이 홍시를 닮았네

셋이서 박타푸르에 도착했다. 비싼 입장료를 내기 싫어 한동안 외곽만 구경하고, 걸어서 나갈코트로 가는데 꽤나 먼 길이다. 박타푸르를 벗어나니 완연한 시골길인데,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들이 벼를 베어 털어내고 있다. 우리 시골과 달리 전통적인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눈 닿는데 까지 논이 펼쳐지고 금세 인적이 끊어지기도 한다. 논길로 접어들어 인적 없는 산길을 따라 한동안 걷고 나서 산 중턱에 앉아 허기를 채웠다. 먼 길이다, 산길을 감만으로 구불구불 한참을 올라 차가 다니는 길 위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소형 버스는 사람이 터져 나갈 정도로 탔고, 지붕 위에도 사람들이 빼곡하다.

 

길 한쪽이 낭떠러지인 경우가 많은데,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언덕길 오르느라 지쳐서 버스를 탔더니, 나갈코트 언덕에서 내려준다. 호객꾼이 끄는 숙소에 갔더니, 전망은 좋은데 시설이 엉망이다.

맞은편에는 일본의 젊은 여성이 현지인이랑 방을 잡았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젊은 여성이 동남아 여행에서 이러는 경우가 간간이 눈에 띈다.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서라는데, 남자들은 더 하면 더할 테지만 우리네 이야기 꺼리로 오르진 않는다.

 

카트만두에서 나랑 같은 숙소에 오래 묵고 있는 스님이 이런 이야길 한 적이 있다. “지난번에 티벳에서 넘어 온 어린 여자애가 현지 남자애를 달고 왔더라고. 근데 같이 와서 한 방에 묵던 녀석이 여권이랑 금품을 다 갖고 도망가 버렸어. 오도 가도 못하고 징징거리는데 난리도 아니었어”하며 어이없어 했다. 흔한 일이다. 길가다 만나 함께 며칠씩 여행하던 사이에도 간혹 일어나는 일이다.

 

 

해질녘 일몰이 경이롭다. 구름에 쌓인 태양이 홍시의 색깔로 하늘을 물들이고 검게 그을던 구름도 붉은 빛에 섞인다. 잠시 후엔 흐려지기 시작한 땅이 붉어지고, 다시 서서히 흐려지고 어두워온다. 해 떨어지고 쌀쌀한데 따뜻한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한바탕한 뒤에 다른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앞서의 집보다 높게 자리하진 않았지만, 주변에 화초가 잘 가꿔져 있어 나름대로 운치는 있다. 닭튀김과 몇 가지 요리를 시켜 식사를 했는데, 맛은 있지만 양이 터무니없이 작다. 방은 습하고 냄새나고 1인 침대가 두 개, 화장실이 안에 있다. 매트만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막내인 인숙이가 바닥에 자게 되었다.

* 짱구나라얀 사원으로 가는 길- 마음이 머무는 언덕을 따라

내가 심하게 코를 골았는지 두 여성이 일출을 본다. 나도 덩달아 일어나 일출을 보고 잠자리로 돌아왔다. 어제의 일몰이 재현되고 있다는 착각이 든 동안, 순서가 거꾸로 진행되는 걸 알아차렸다.

 

저 아래 구름이 가린 까마득한 땅 밑에서 틈을 쪼개고 태양이 떠온다. 찢긴 상처만큼 붉어진 구름이 우리가 선 곳과 가려진 세상을 나누었다가 이내 눈을 가린다. 빛이 산란하면서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다. 온 몸이 태양빛에 젖어든 사이 햇살이 따갑다.

 

짱구 나라얀 사원(3세기에 건립된 힌두사원-세계의 문화유산)으로 걸어가는 길은 멀어도 전날에 비해 한시름 놓인다. 박타푸르 일대의 분지 위에 우뚝 솟은 나갈코트에서 내려가는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어, 길을 가면서 사방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저 멀리 카트만두가 눈에 들어오고 강줄기가 뵌다.

 

여기 저기 논 한가운데 놓인 붉은 벽돌 공장의 홍시색도 보인다. 누런 들녘을 바라보며 걸어가다 보니, 산길에서 만난 흙으로 지은 농가의 모습이 놀이동산에 온 착각을 불러 온다. 농가 옆 나무 위에는 멜론만한 귤이 열렸다. 맛은 없다고 인숙이가 귀띔한다. 언덕 위에서 전통 옷과 장신구를 한 할머니와 손자, 손녀, 염소, 송아지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에 반해 아기 염소를 들고 번갈아 사진을 찍었다.

 

길에서 만난 코흘리개 어린아이 셋은 서로 다른 계절의 옷을 입었다.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미리 준비한 연필을 주면서, 맑은 얼굴과 인사를 나누었다. 길가에 핀 야생화에 절로 눈이 간다.

입구에서 돈을 내고 들어간 힌두사원은 계단을 따라 좌우로 탕카(두루마리 종교그림-기하학적인 문양화)인지 또 다른 전통그림인지 문양을 그려내는 사람들이 있고, 사원을 둘러친 인가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 빈터에 벼를 말리고 있다. 짱구 나라얀 사원은 1,700년이 넘은 비시누 사원으로 네팔의 예술사를 담고 있는 유적이다.

 

온통 비시누와 비시누의 화신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나라얀(나라연, 나라야나)은 비시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원의 모습은 고즈넉하고 이전 것들과 다르게 맘에 다가온다. 꾸며진 모습이 전혀 없고 입구에선 부조된 조각상 사이에서 닭들이 모이를 쪼고, 마당에선 아이들과 개가 함께 뛰어 논다.

 

석상 위나 탑 속에서 소꿉장난을 하기도 하고, 한편에선 사람이 사는 것도 같다. 돌에 부조된 힌두신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고, 여기저기 문양이나 금속장식, 사방입구를 지키고 선 짐승의 서로 다른 모습, 처마에 둘러 친 동물조각과 지붕을 떠받친 힌두신, 아름다운 선을 그려낸 돌조각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힘 있는 가루다(비쉬누의 종복, 불새)의 돌조각상이나 황금색의 부속 건물, 철망으로 만든 집안에 모셔 둔 황금색 신상, 하나하나 눈에 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마당 한쪽에 위치한 비쉬누와 불새 가루다의 조각상은 네팔의 지폐에 새겨져 있다. 별채의 계단을 올라가니, 낡은 여닫이 나무창에 새겨진 꽃이 백송이가 넘는다.

언덕을 터벅터벅 굽이굽이 내려가면서, 누런 들녘에 물들어 가는 것 같다. 꼴을 베어 머리에 잔뜩 인 할머니와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함께 걷는 모습은 서로가 다른 신분임을 알려준다.

 

장대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양 끝에 풀 더미를 매단 농군의 모습이 어린 시절 우리의 시골 풍경이다. 다시 돌아온 박타푸르에서 탄두리 치킨을 먹었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는데, 커리(카레)를 발라 매콤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 탄두리는 장독 내부 같은 전통화덕을 말한다.

붉은 흙이 많아서 일까, 네팔의 집은 온통 붉은 벽돌집이다. 덜발광장이나 박타푸르의 오래된 건물들도 문양을 새긴 나무와 붉은 벽돌을 섞었고, 서민들이 사는 쓰러져가는 많은 집들이 붉은 벽돌이다.

 

 

여기 것은 우리의 그것처럼 견고하지도 못하고 조악하고 푸석해 보인다. 오래된 것일수록 하나같이 붉은 벽돌 지붕 위로 잡초가 수북이 자라고 있다. 어제 박타푸르 외곽에서 본 버스 정류장도 나무로 기둥을 하고 벽과 지붕을 붉은 벽돌로 쌓아 머리카락이 뻗친 듯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조악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그저 이 땅에 어울리는 정겨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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