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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18>-사석원의 예술세계

 

그의 한국화에서 우러나오는
거침없는 필력은 양해(梁楷)와 같은
화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동물 그림이든 사람을 소재로 한
그림이든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여러 장을 그릴 수 있는 사석원….
전형적인 한국화, 나아가
동양화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얼마 전 서울아트가이드의 책임 있는 편집인의, 투기 바람으로 가고 있는 미술시장을 경계하고 우려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필자 역시 그의 생각에 어느 부분은 공감이 되었다. 그림을 매매하는 화상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작품 수준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적합한 작가를 고르게 되기 십상이다. 작가의 작품성보다는 돈이 될 만한 작가들을 찾아다니는 게 많은 화상들의 생리인 것이다.

몇몇 대표적인 화랑에 의해 움직여지는 우리의 한국 화단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작품성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선호하는 그림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작가들 스스로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예술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겠다.

필자가 본 작가 사석원은 재주가 많은 작가로서 기교가 뛰어나고 감각도 있다. 이제 그는 인기 작가라 할 수 있을 만큼 분주해진 듯하다. 이는 그의 작가적 역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투기 붐처럼 일고 있는 최근의 미술시장의 활성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사석원에 대해 글을 쓴 게 필자의 기억으로는 벌써 이년 가까이 되어 간다. 용인 지역의 한 신문에 그에 대한 글을 쓸 때만 해도 그를 잘 안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부담을 가졌었다.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예쁜 꽃 속에 묻혀있는 듯한 당나귀나 소를 보며 참 재미있는 필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작가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언젠가 만나게 될 것으로 여겼었다. 이제는 그를 우리 집 앞마당을 보듯 잘 알게 되었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 만났을 뿐만 아니라, 사석원의 좋은 팬이라고 할 만한 한 컬렉터를 통해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의 작업 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많은 유화 재료를 사용하여 금강산을 소재로 한 풍경작품들을 그리고 있었다. 본래 한국화를 전공하였고 한국화 작가로 활동했었지만 재료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유화의 재질을 익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빙긋이 웃고 있는 사석원의 얼굴에서 새삼스레 그림쟁이의 냄새가 풍겼다.

서울의 부유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7살이 돼서야 겨우 말을 시작했으며 게다가 더듬거리고 병약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이 때문에 상당히 내성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의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구나 여러 번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친구를 사귀는 게 무척 어려웠다.

 

낯선 땅의 이방인처럼 지킨 침묵은 그를 자연스럽게 그림의 세계로 이끌었다. 서투른 말투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더 편하게 생각되었다.

장손 집안의 대식구였기에 그의 집에는 자연히 가까운 친척들이 늘 왕래하였다. 그는 가끔 삼촌이나 사촌 형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며 부러워했으며 그것을 흉내 내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로지 그림 그리는 것에만 흥미를 느꼈을 뿐이지 공부하는 것에는 흥미를 못 느꼈다. 숙제를 하는 것은 정말로 싫어했다. 사석원은 초등학교 재학 시절을 회상하면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맞은 따귀가 이삼백 대는 족히 넘을 거라며 배시시 웃었다.

 

그는 아마도 어려서부터 정해진 틀이나 어떤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자유분방한 성격은 타고난 작가적 기질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양장점을 하던 어머니를 따라 종종 찾아갔던 시골 포천의 외가는 작가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안개 젖은 밤에 울어대는 소쩍새, 보리밭 너머로 반짝이는 햇빛과 엉겅퀴, 새벽닭, 운 좋게 한 손으로 낚아챈 모래무지 등은 그의 어린 시절의 미적 감수성을 한층 키워주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들이었다.

 

그는 여러 동물의 모습이라든가 사물들을 그 누구보다도 풍부하게 그릴 수 있다. 사석원의 남다른 관찰력은 주변에 처해있는 여러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졌다고 생각된다.

사석원은 술을 좋아하는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반드시 술을 마시고나서 붓을 든다거나, 매일 저녁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고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 등은 그 진실 여부야 어떻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담한 필치로 도석인물화 등을 잘 그렸던 옛날 남송(南宋)의 화가인 양해(梁楷)의 곁에도 항상 그림과 술이 함께하였다.

 

 

그래서인지 양해의 화풍은 조방(粗放)하면서도 힘이 있다. 큰 붓을 사용하여 한 번에 칠하여 독특한 운필과 빠른 필력으로 개성미가 풍부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사석원의 한국화에서 우러나오는 거침없는 필력은 양해(梁楷)와 같은 화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동물 그림이든 사람을 소재로 한 그림이든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여러 장을 그릴 수 있는 사석원은, 물론 양해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전형적인 한국화 내지는 동양화가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사석원은 얼마 전 파리에서 유화를 그려 전시회를 열었었다. 당시 오픈 식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장인정신(匠人情神)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 쉼 없이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거리낌 없이 그려나가는 유화 작품들이 그가 지닌 옥토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일신 우일신((日新又日新)하여 더욱 좋은 그림으로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장차 작가로서의 더 원대한 꿈을 펼쳐나가며 더욱 훌륭한 화가로서 괄목상대(刮目相對)한 발전을 이루기를 바란다. ■ 글= 장준석(미술평론가)

<약 력>
1960 서울출생
1984 동국대 예술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1989 佛 국립 파리8대학 석사 과정 수학

<주요개인전>
1989 송원화랑, 서울
1991 금호미술관, 서울/마츠카와 갤러리, 도쿄, 일본
1993 예원화랑, 서울/키앙 갤러리, 미국
1996 가나화랑, 서울
1997 노화랑, 서울
1999 갤러리 가나 보부르, 파리, 프랑스
2000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1 공간화랑, 부산
2002 동원화랑, 대구
2004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6 갤러리 가나 보부르, 파리, 프랑스
2007 가나아트센터, 서울

<주요단체전>
1981 앙데팡당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4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1985 살롱 방뉴전, 파리, 프랑스
1986 2인전, 파리, 프랑스
1993 3인전, 조지아 갤러리, 애틀란타, 미국
1994 한국의 미술, 레버쿠젠, 도마겐, 독일
1995 한국 현대 미술, 베이징, 중국
1996 서울 미술 대전, 서울
1997 97 FIAC, 파리, 프랑스
1998 한국 현대 회화전, 벨기에·인도
슬래드 모어 현대 조각전,
슬래드 모어 갤러리, 런던, 영국
1999 99 FIAC, 파리, 프랑스
2000 화랑미술제, 사석원·유영교 조각전,
예술의 전당, 서울
2001 2001 희망전,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2 사석원·이동기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3 동양화 파라디소전, 포스코미술관, 서울
제1회 옥션 페어전, 서울옥션, 서울
2004 한국 현대 미술전, 강콜렉션, 뉴욕, 미국
2004 KIAF, COEX, 서울
2005 한국화랑미술제, 예술의전당, 서울
2006 아프 파리전, 그랑 팔레, 파리, 프랑스
2007 7.5일 예정, 가나화랑 개관기념 전시회 ‘바다이야기’, 해운대 현대로보텔호텔,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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