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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21>-오병욱의 예술세계

오병욱은 인생의 고난과 희망을
산을 소재로 하여 담고 싶었다.
흑백을 주조로 한 차갑고 냉혹한 시련의
겨울을 표현하면서도 희망을 지닌
봄의 요소들을 담고자 하였다.
“겨울山은 적막했어요.
사물들은 빛과 색을 잃고 죽은 듯이 서 있었으며, 그들의 해체된 삶은 흑백의 선묘로 흐트러지게
표현해도 무방했어요.
그러나 눈과 얼음이 녹아 다시 흐르면서
산 속은 긴장으로 가득 차게 되죠.
소멸과 부활이 대조되는
감동적인 계절이 초봄인 거예요….”


 

自然 동경… 화폭에 그리다

무더운 날씨 틈틈이 비가 내려서 일상에 지친 심신을 풀어준다. 비 온 여름 산에 번져있는 농무(濃霧)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위대함까지 느끼게 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이 땅의 무대 위에 잠시 출현했다가 이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는 듯하다.

 

무더운 날씨 틈틈이 비가 내려서 일상에 지친 심신을 풀어준다. 비 온 여름 산에 번져있는 농무(濃霧)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위대함까지 느끼게 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이 땅의 무대 위에 잠시 출현했다가 이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는 듯하다.

인간사의 진리를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산과 들, 강은 마음의 고향과도 같으므로 그 곳에서 녹녹하게 살아보고 싶은 게 우리들의 공통 바람일 것이다.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끝없는 동경의 대상이자 감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은 화가들의 그림의 소재가 되어왔다.

화가 오병욱은 자연을 벗 삼아 즐기면서 산과 들의 풍광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한다. 그의 그림은 산과 들을 소재로 한 여느 그림과는 달리 흑백의 색을 주로 사용하며, 게다가 거기에 은근한 삶의 철학마저 흐른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 화사하거나 아름답기보다는 진지하며 담박하다. 마치 인생의 험난한 역정을 겪은 이가 깊은 산속에서 자아성찰과 수양의 세월을 거치고 당당하며 가식 없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자연을 표현하는 작가 오병욱이 언젠가부터 화사한 색을 잘 쓰지 않는 것을 필자는 궁금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산과 자연을 그리는 작가라면 강렬하거나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색을 화려하게 쓰면 그림도 잘 팔리고 그림을 사려는 사람도 더 많아진다는 것쯤은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말이다. 혹시 천성이 흑색이나 백색처럼 담박한 색을 좋아한 것은 아닌지 등등 별의별 생각을 했었다.

그의 작업실을 찾아 서울 강북을 벗어날 무렵, 오래 전 흑백 사진과도 같은 추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필자가 군 생활로 조금은 지쳤을 80년 초 무렵에 군의 화보에서 우연히 보았던 오병욱의 그림은 그림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작품은 갯벌을 배경으로 일하는 해녀의 모습을 다양한 색으로 훌륭하게 소화해 낸 그림으로서 기본기가 탄탄하였다.

 

그의 작품은 구상력과 표현력 및 기교와 감성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었다. 당시 필자가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군인이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의 그림은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주기에 충분하였던 것 같다.

오병욱의 작업실은 상당히 큰 창문들이 벽면의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창문들이 꽤 크고 높이 달려있네요.” “아~ 네. 작업을 하는 데 외부 사람들이 보이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자연 채광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해서 광선이 듬뿍 들어올 수 있도록 고민하며 만든 거지요.”

 

전등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의 광선에 신경을 써서 만든 작업실은 거의 보지 못했었다. 작가가 그 동안 자연의 빛과 색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가 이처럼 자연 채광에까지 면밀하게 신경을 쓴 것을 보며, 작가의 친할아버지인 오지호(吳之湖) 선생이 떠올랐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상징적인 존재인 오지호선생을 처음 만난 게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오지호선생은 한국의 자연이 다른 나라와 달리 색채와 더불어 친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였고, 한자 공부와 학문의 중요성을 필자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그의 작품 ‘남향집’은 한국의 자연광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맑은 하늘 아래 조화롭게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오병욱은 설악산, 지리산, 주왕산 등 여러 산들을 그리면서 작품에 심도를 더해갔다. 그러나 오병욱은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서 산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마간산 격으로 그린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산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라 생각되었다.

작가의 심경이나 감성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자신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부터였다. 가슴에서 무릎까지 깁스를 한 채 3개월 동안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1차, 2차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부모의 애간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들어갔다. 꼬박 일 년을 고통 속에서 넘긴 아이는 기적적으로 정상 아이처럼 걷기 시작하였다.

오병욱의 가족은 어느 정도 회복된 아이와 함께 조심스럽게 북한산에 올랐다. 밝고 명랑한 아이를 보며 무척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산행 중 여러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리고 산행 자체가 ‘길’처럼 여겨졌다. “산행에는 어려운 고갯길이 있는가 하면, 쉴만한 경치도 있고, 완만한 내리막길도 있었으며, 매 순간 각 장소는 예측불허로 변하였고, 다시 산에 오르게 된 아이와의 만남이라는 요소가 더해져서 산행은 더욱 짙은 감정을 일으키게 되었어요. 인생여정이라 하듯이 우리는 항상 길을 떠나며, 사람과 사건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지 않습니까?”

오병욱은 인생의 고난과 희망을 산을 소재로 하여 담고 싶었다. 흑백을 주조로 한 차갑고 냉혹한 시련의 겨울을 표현하면서도 희망을 지닌 봄의 요소들을 담고자 하였다. “겨울산은 적막했어요. 사물들은 빛과 색을 잃고 죽은 듯이 서 있었으며, 그들의 해체된 삶은 흑백의 선묘로 흐트러지게 표현해도 무방했어요. 그러나 눈과 얼음이 녹아 다시 흐르면서 산 속은 긴장으로 가득 차게 되죠. 소멸과 부활이 대조되는 감동적인 계절이 초봄인 거예요.”

 

 

이제 오병욱은 예전보다 산과 훨씬 자주 만난다. 산의 폐부를 느끼고 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따라서 여기에서 나오는 작가의 그림은 진솔할 수밖에 없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은 흔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국내외 어느 작가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우리의 정서가 풍기는 멋진 산의 그림이라 할 만하다. 미불(米)이나 소동파(蘇東坡)가 중국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산하를 멋지게 표현하였듯이, 또한 중국 산수화의 대가 장대천(張大千)이 여산과 황산을 오르내리며 무한한 산의 정기를 그려내었듯이, 오병욱의 산 그림에도 오병욱만의 내재된 힘과 정기가 담겨 있다. 그는 오늘도 이 기운을 바탕으로 쉬지 않고 한발 한발 앞으로 정진하고 있다. ■ 글= 장준석(미술평론가)

<약 력>
서울대학교 美術大學 繪畵科
서울대학교 美術大學院 繪畵科
프랑스 파리 제 8대학교 造形美術學科 大學院 博士 N .0080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시간강사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부 교 수
Art, Wonkwang University
현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부교수
한국미술협회 회원 (평론분과)
서양미술사학회 평의원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예술의전당 미술전시감독

<논문/저서>
1. 미술이란 무엇인가? 마리아 카를로 프레테 저, 오병욱 번역, 청년사, 2004
2. 한국적 미에 대한 오해, 미술의 이론과 실천, 학고재, 2004
3. 유럽 40일간의 가족일기, 효형출판, 2002
4. 광복후의 미술운동 한국근대미술사학 2집 1996. 2.
5. 한국현대미술의 단면, 일지사, 1995. 11.
6. 서양미술의 이해, 일지사, 1994. 4.
7. 朝鮮美術展覽會 硏究 서양미술사학회, 1993.12.
8. 한국 近代 繪畵史에 가해진 西歐美術의 衝擊과 그 反響, 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92. 10.
9. 미학적 명상, 일지사, 1991. 5.
10. Comparaison entre le paysage chinois et le paysage europeen, Univ. PARIS
VIII , 1988.5. (동양 산수화와 서양 풍경화의 비교)
* 번역발표 미술세계 1988. 10.~1989. 5.

<개인전>
1995 [인간, 사회, 재난] 동방프라자 미술관
1996 [겨울여행] 갤러리 이콘
1997 [북한산 - 길, 봄으로 가는]
1999 [봄, 여름, 가을, 겨울] 갤러리 상
2000 [외금강/외설악] 갤러리 상
2001 [빠른 풍경 2000] 예술의 전당
2003 [죽림/송림/인림] 모란갤러리
2005 [빠른 풍경 - 사 계] 광주 신세계 갤러리
2006 [봄, 여름, 가을, 겨울 - 그리움] 인사갤러리

<단체전>
2005 [북경비엔날레]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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