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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초중등교육법 13조’개정의 필요성

의무교육으로 학생 인권침해 학습자 선택에 부응할 수 있는
대안학교법 시행 환영을 위해 관련법 개정노력에 경주해야

 

지난 겨울 포천에 있는 사랑방학교라는 기독교대안학교를 방문하여 그 학교를 운영하시고 계시는 목사님과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대화하는 가운데 참으로 인상 깊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교육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은 아이들이 어느 곳에서든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말이지만 곱씹어 보면 이 말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학교는 행복한 배움터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의 현장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미래의 행복을 찾아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교육 현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 와중 속에서 대학은 교육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입시 제도에서 대학의 자율권을 행사하겠다고 하고 있고 정부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내세워 교육 평준화정책과 3불 정책을 고수하면서 어떡하든지 학교교육을 국가의 간섭 아래 놓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술안주거리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대안학교가 200여 곳이나 생겼나 보다.

우리 사회는 교육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국가는 학교를 행복한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학교에 다니는 많은 아이들은 학교를 가기 싫은 곳 내지는 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 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딘가에 구속되어 입시지옥으로 내 몰리고 있는 절박함이 감돌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지금의 고통을 참고 견딘다면 분명히 미래에는 더 큰 행복이 보장된 것이라는 소망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모두 세계화시대를 선도할 리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암암리에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공신화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주체나 기관은 공통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을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모두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노력을 하는 걸까?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대안학교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기 싫은 학교’, ‘원치 않는 교육’에 대한 반성이 대안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이념의 바탕이다. 대안학교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무너진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 등장한 학교를 넘어서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지향하며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대안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교육이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선결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중등교육법’ 13조의 개정이다. 내용인즉슨 ‘취학 의무 조항’인데 이 조항은 국가는 일정 연령의 아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설치·운영할 의무가 있고 부모는 일정 연령의 자녀에게 의무적으로 학교에 보낼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은 중학교까지 의무적으로 취학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범법자로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68조 제1항).

취학 의무 조항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생활수준이 너무 낮아서 교육을 받을 수조차 없었던 시대에서 국가가 의무교육기관을 세워서 국민으로서 누려야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취학의 의무를 이행하게끔 하는 것은 옳았다. 교육의 의무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교육은 행복한 삶의 일차적 조건이다. 우리 인간은 인류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문화 내용을 습득하고 내면화하지 않고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아예 국가에서는 헌법 제31조에 ‘교육의 의무’ 조항을 명시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왜 모든 국민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교육을 국가가 인정하는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가? 진정으로 교육이 아이들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려는 노력이라면 국가는 학습자의 교육 기회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평준화되고 획일화된 교육은 맞지 않다. 교육이란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이어야 한다. 피교육자의 다양한 흥미와 욕구에 적합하고 그 선택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급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달란트를 계발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며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자녀 교육의 책임은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있기 때문에 만약에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책임진다면 당연히 부모의 자녀 교육권을 인정해 줄 필요도 있다. 또한 학교 교육을 지지하고 있는 세계관이 가정교육의 세계관과 다르다면 당연히 학습자의 필요에 맞는 교육을 인정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 아닌가? 학습자가 받고 싶지 않는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학습자를 불행하기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여기에 대안학교의 근본이념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 13조는 의무교육을 취학의무에 한정시킴으로써 학부모의 교육권과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성격이나 적성, 왕따 등에 의하여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고통의 현장에서 억지로 9년 동안이나 원치 않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은 이는 학생의 인권침해에 해당된다. 따라서 획일적으로 학교교육만을 강요하고 다른 다양한 방법에 의한 교육을 허용하지 않는 초중등교육법 13조는 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겠다. 최근 발표된 대안학교법 시행령은 대안교육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대신에 대안학교법 시행령을 무색하게 하는 더 근본적인 초중등교육법 13조를 개정하려는 노력에 경주한다면 대안학교가 설 자리가 훨씬 넓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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