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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훈수정치

이태호<객원 논설위원>

민족종교의 한 갈래인 증산교의 창시자 강증산은 ‘대순전경’이란 책에서 오선위기(五仙圍碁)론을 설파했다. 강증산은 한반도의 장래를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것에 비유했다. 즉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를 두며 주인은 어느 쪽도 훈수할 수 없어 손님 대접만 잘 하다가 날이 새고 바둑이 끝나면 네 신선은 돌아가고 판과 바둑은 주인 차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의 각축전 속에서도 주인인 한민족은 유구한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낙관적인 사관을 반영한다.

바둑에서 훈수란 어느 정도의 기본기를 갖춘 사람이나 고수가 하수들의 옆에서 게임의 승부를 좌지우지하지 않는 범위에서 몇가지 활로를 깨우쳐주는 것을 말한다. 프로들의 대국에서 훈수란 있을 수 없다. 훈수는 정상적인 바둑에서 때로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위반할 뿐 아니라 내기바둑에서는 정실과 부정의 방편으로도 이용된다. 훈수꾼 중엔 훈수해주고 개평을 얻어먹는 사람도 있다. 훈수가 반드시 고수의 특권일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을 역임하고 정치를 떠난 김대중씨가 요즘 활발한 훈수정치로 세상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범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들과 여권의 주요 정치인들이 최근 100일 동안 20여 차례나 김대중씨 댁을 찾아가 정치에 관한 훈수를 받아왔다. 김대중씨는 그들에게 남북한 정상회담이 매년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여당의 합당을 주문하기도 하고 정치인의 언행을 설명하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경륜이 부족하고 어른 말씀을 못들으면 행동거지가 불안하기 때문에 이처럼 김대중씨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훈수를 들어야만 ‘국민의 대표’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또는 표를 얻는데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에 머리 숙이는 것쯤은 가벼운 제스처 정도로 치부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 앞에서 재롱을 떠는 애완견처럼 처신하는 것이 국민에게 귀엽게 보인다고 믿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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