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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27>-진철문의 예술세계

 

시인이기도 한 진철문은 상당히 오래 전인 1970년 대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이다.

작품뿐만 아니라 이론적 비평, 미술 현장에서도 경험이 풍부한 화가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우리의 감성과 정서를

불교적으로 순화시키는 우리 시대가 낳은 진정한 예술가라 할만하다.

그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만의 세계와 공간을 통해 가랑잎이 바람을 타고

세월을 낚듯이 하고 많은 사람들과 웃고 울며 아파하는 진진묘(眞眞妙)를 즐기고 있다.

한국의 정신… 새 생명으로의 환생

 

근대 이후 한국 미술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미술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자, 전통을 고수해오던 한국 미술은 커다란 내홍을 겪으며 뿌리 채 흔들릴 것만 같았다. 오늘날에도 그 맥을 힘들게 이어가야 할 정도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서양화이든 동양화이든 한국화이든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시대이기에 굳이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중시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미술의 정체성이 모호하며 불투명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우리말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에도 글로벌 시대 운운하며 굳이 영어를 사용하여 그 전달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우리 문화나 정신보다는 서양의 문화를 더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한국 미술은 우리만의 색깔과 냄새를 가지며 독자적인 예술성을 이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낳은 우리의 미술문화에서 우리의 정서나 생활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우리의 삶과 문화 자체에 더더욱 관심과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나라와 민족이 있어도 안으로는 나라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함께 자성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미술평론을 해오면서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미술문화를 항상 염두에 두어왔다.

이러한 점을 근간에 두고 오늘날까지의 우리 한국미술을 돌아보면, 근대 이전의 우리 미술은 불교미술이라는 큰 틀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불교가 국교였던 영향으로 불교미술에는 우리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배어있는 것이다.

 

불교미술이 우리 미술의 70%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그만큼 불교미술은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정신적 산물이 될 것이다. 필자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의 글 내용도 불교미술의 현대화를 위한 모색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불교미술을 소재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진철문의 예술세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며 주목할 만하다. 시인이기도 한 진철문은 상당히 오래 전인 1970년대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이다.

 

그는 작품뿐만 아니라 미술 이론이라든가 비평, 미술 현장에서도 경험이 풍부한 화가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진철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인 것 같다. 당시 필자는 불교신문인 ‘법보신문’에 불교미술인들을 탐방하여 비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불교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던 여러 작가들 속에서 진철문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자 맘을 먹고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던 중에 필자가 병원신세를 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다른 평론가에게 그 란은 넘어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필자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성적이고 세월을 비껴간다고 할 만큼 소박하며 담박한 진철문의 작업 공간을 처음 찾았을 때,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는 공간으로 꾸며진 작업실에서는 풍류적인 맛이 느껴졌다. 그의 손맛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생활공간이자 작업 공간인 그곳은 그가 지금껏 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굳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밖인 불교미술을 소재로 한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여린 심성과 질박함을 지니고 있는 진철문이기에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처럼 출세를 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부류의 화가이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즐길 줄 아는 소박함을 갖추고 풍류의 멋을 아는 화가인 것이다.

 

그러기에 화려하지 않은 작업 공간이지만 예술가의 삶을 현장으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의 작업실을 찾은 지가 벌써 수개월이 흘렀지만 필자의 마음에 여느 작가들의 작업실과 다르게 남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작업실을 방문했을 당시, 항상 정중동하는 것 같은 진철문은 독특한 이미지가 담겨있는 작업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전시하려고 준비한 일련의 작품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쓸모없어 버려진 공구들의 한 잔해들이었다.

 

고철더미나 쓰레기장에서 죽어있는 폐품들이 새 생명성을 부여받아 우리의 삶과 심성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아름다움과 격을 갖춘 예술품으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그의 작품들이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서진 삽의 일부라든가 기계 부품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생명체로 다시 환생한 그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서 그가 참으로 진지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의 중심 사상인 윤회(輪廻)를 예술로 승화시킨 듯한 그의 일련의 작품들에는 훌륭한 생명성이 담겨있었다.

 

항상 사물의 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적 자세가 있기에 가능한 그의 작품들을 놓고 미술사적 혹은 미학적으로 비평을 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우리의 감성과 정서를 불교적으로 순화시키는, 우리 시대가 낳은 진정한 예술가라 할만하다.

항상 중절모를 쓰고, 예술가라는 힘든 삶을 토로하면서도 그것을 즐기기도 하는 그의 감성적 끼는 순수 그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신을 뽐내기보다는 자신과 예술 그리고 불심이 하나가 되는 피안의 세계를 은근하게 추구하는 듯한 그의 예술 세계에는 분명 그 나름의 힘과 자존심이 내재되어 있다. 많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듯 세상을 스쳐지나 가는 듯한 진철문은 오늘 이 시간에도 자신의 작품들과 선문답을 즐기고 있다.

 

그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만의 세계와 공간을 통해 가랑잎이 바람을 타고 세월을 낚듯이 하며 많은 사람들과 웃고 울며 아파하는 진진묘(眞眞妙)를 즐기고 있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동국대 미대와 교육대학원 졸. 한국조형연구원 원장, 한국미술협회 회원/ 용인미협자문, 한국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용인문화포럼 공동대표

<수 상>

1978 부산미술전람회 금상(조각부분 최고상)

2000 경기미술상 수상

2001 용인시장상 수상 (정신보건센터 미술치료 자원봉사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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