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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농부선생 알곡제자’

논술·수능등급제 등 수험생 곤욕
한해 노력이 거둔 모두 소중한 알곡

 

2학기 수시모집이 한창이다. 모집 정원의 50%를 넘는 인원을 뽑는다고 하니 수험생이라면 한번쯤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수험생들은 우선 오는 11월 15일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해보다 학교생활기록부 반영 비중이 높아졌지만 올해부터 수능 등급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한 등급이 떨어지면 그만큼 경쟁력을 잃게 된다.

수능에 자신을 잃은 학생이라면 더더군다나 회가 동하게 된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부모들은 또 그들대로 한번쯤은 혹할 수밖에 없다. 올해 수험생들은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수험생들이 아닌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논술 광풍이 몰아쳤고, 내신이 9등급제로 바뀌는 바람에 경쟁은 교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뿐이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내신 반영 비율을 놓고 대학과 교육부의 힘겨루기가 불과 얼마 전까지 있지 않았는가.

특히 고려대는 2008학년도 대입 내신 실질반영비율 문제를 놓고 교육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제재조치가 취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었다.

힘들게 왔지만 수험 시계만큼은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다.

벌써 9월. 게다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도 함께 접수한다. 이래저래 이번 주간은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물론이고 입시 담당 교사들까지 덩달아 바빠진다.

“우리 아이 성적을 보고 갈만한 대학 뽑아주세요.”

안타까운 마음에 성적표 한 장 달랑 보여주고는 애처로운 눈빛을 하고 있는 학부모를 만나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오죽 답답하면 이렇게라도 할까. 괜히 죄지은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나도 덩달아 답답해진다. 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

가고 싶은 대학이 없을까. 이렇게 묻는 나도 한심하다. 가고 싶은 대학과 갈 수 있는 대학이 다르고,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는 성적이 미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의 수험생들의 처지가 아니던가.

“모르겠어요.”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어떻게 답변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기에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게 속 편하다. 나는 그저 씩 웃어준다. 옆에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구겨진다. 금방이라도 막말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초·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다. 제 형은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알아서 했고 지금은 좋은 대학에 갔다. 옆집에 있는 아무개는 성적이 좋아 이번에 알아주는 대학에 원서를 낸다고 하더라. 활화산의 뜨거운 용암인 듯 머릿속에 맴도는 말은 이내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수험생들에게 가장 큰 경쟁상대는 바로 ‘엄친아’라고 한다. ‘엄친아’란 ‘엄마 친구의 아이’란다. 정말 왜 엄마 친구의 아이들은 그렇게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인지. 모두들 대학은 왜 그리 잘 가고 못하는 게 없는 건지. 교실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와 처지가 비슷한데 왜 엄마 친구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건지 참 알 수 없다. 이쯤 되면 상담하기가 힘들어 진다. 아이는 마음을 닫고 학부모는 분노로 이글거린다.

입시지도를 할 때면 고3 담임은 농부가 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던 여름의 수고가 끝나고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농부의 손길도 바빠진다. 농부가 거두는 알곡은 바로 아이들이다.

알알이 튼실하게 맺힌 녀석이 있지만 벌레의 등쌀에 제 몸을 내주고 다른 알곡을 지켜준 놈, 속빈 죽정이 같은 놈 등 알곡도 여러 종류이다. 그 중 어떤 놈은 하늘에 감사를 드릴 때 사용하고, 또 어떤 놈은 내년에 쓸 씨앗으로, 사람이 먹을 식량으로, 사료로, 그리고 겨울을 따뜻하게 날 군불감으로 쓰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애쓴 발품이 고스란히 알곡으로 맺혔기에 모두가 소중하다.

교사나 학부모나 지금 당장 대입 원서를 놓고 고민하는 아이를 예쁘게 영근 알곡으로 보면 좋겠다. 내년에 심어야할 씨앗으로, 따뜻한 군불감으로 사용할 소중한 알곡으로 보면 아이의 미래도 함께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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