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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그린스펀 회고록

이태호 <객원 논설위원>

미국연방준비제도회(FRB) 의장을 18년이나 역임하는 동안 6명의 대통령을 맞으면서 ‘금융 대통령’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흐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지난해에 은퇴한 앨런 그린스펀이 17일부터 시판된 회고록 ‘격동의 시대-새로운 세계에서의 모험’에서 주목할만한 견해를 펼쳤다.

그동안 공화당의 정책에 친근감을 보였던 앨런 그린스펀은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전 세계에 선포한데 반해 “이라크 전쟁의 동기가 실상 석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석유와 관계된 것이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인정하기가 불편하다는 게 슬펐다”고 토로했다. 세계 최강의 정보와 무력을 자랑하는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후 샅샅이 수색했지만 대량 살상무기를 찾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세계 3위의 석유 보유국인 이라크에서 석유 이권을 탐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그린스펀의 말은 양심의 고백으로 들린다.

또한 그린스펀은 “우리가 몰랐고, 곧 밝혀졌던 사실은 한국이 외환보유고를 갖고 돈놀이(playing games)을 했다는 것이었다”라고 비판하고 “한국은행은 보유한 외환 대부분을 몰래 팔거나 시중 은행들에 빌려줬고, 이것이 악성 부채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외환 보유고 250억 달러는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맞서기에 충분한 규모라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이것은 한국의 IMF사태를 ‘미 제국주의의 한국경제 침략’으로만 몰아붙이는 일방적 사고와는 궤도를 달리 한다.

특히 그린스펀은 이 회고록에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논평한 데 이어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를 향해 “정치가 백악관을 지배했으며, 공화당은 ‘원칙’을 ‘권력’과 맞바꾸었으나 결국 두 가지 모두를 잃어버렸다”고 통박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괜찮았지만 권력과 금력에 몰입하면서부터 명분을 버리고 타락해 개차반이 돼 물러나는 불행한 대통령들의 머리에 그린스펀의 말은 정문일침(頂門一針)으로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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