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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학벌지상주의의 사회적 병폐

능력배제 학벌기준 평가풍토 장막 갇힌인재 사회적 큰 손실
입사서류 업적 반영 도입 고려 또다른 ‘신정아 사건’ 막아야

 

“사람은 역시 좋은 학교를 나오고 볼 일이다.”

신정아-변양균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 대다수가 한번쯤 되뇌어 보았음직한 말이다.

만약 신정아가 처음부터 예일대 박사가 아닌 고졸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너무 어리석은 질문일까? 그래도 내친 김에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답변내용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란다.

대졸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미술관 큐레이터가 될 수 있고, 대학교수를 할 수 있느냐는 거다. 또 예일대 선·후배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변양균과 엮일 이유가 없었다는 거다. 아무리 서로를 예술적 동지라고 부를만큼 미술을 바라보는 ‘눈의 수준’이 같았다고 하더라도, 학벌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학맥으로 동류의식을 형성하는 심리적 여과장치를 통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론은 이렇다. 실제로 신정아의 예술적 감각이 탁월하고 경영능력이 뛰어났더라도 허위 학벌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큐레이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큐레이터가 돼도 예일대 박사라는 간판이 아니었다면 변양균에게 동문 선·후배라는 이유로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가 어렵지, 일단 올라타고 나면 멈출 때까지 질주할 수 있으므로 신정아라는 야심가에게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을 것이다. 호랑이가 멈춘 후에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정아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 신정아에 대해 ‘영리하고 예의바르고 똑똑한 여자’라고 평한다. 물론 학벌 위조 사실이 밝혀지기 전의 평가다.

신정아의 변론을 맡은 변호인조차도 신정아를 만나고 나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신정아라는 한 인간만을 놓고 보았을 때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적 매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뒤집어 놓고 생각해보면 큐레이터나 예술감독 또는 대학교수로서 신정아의 능력은 부족함이 없지 않았나 싶다. 또 오랜 기간 동안 주변 사람들과 많은 국민들을 상대로 별탈없이 위조된 학벌로 행세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지적 배경도 갖추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신정아의 학력위조 사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 인간 신정아를 두둔할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신정아-변양균 사건에서 한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학벌지상주의와 학맥에 따른 병폐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대학을 나와야 사람 대접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대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대학을 나와야 원서라도 내밀 수 있게 됐으며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려고 해도 대학 졸업은 기본이 됐다.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현장에서 일하는 생산직이라는 공정관련이 사회 통념으로 자리잡으면서 화이트 칼라가 고귀한 직업으로 떠오르게 됐다.

이같은 학벌지상주의 중 가장 큰 사회적 손실은 능력있는 사람이 학벌의 장막에 갇혀 그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조차 중퇴라는 단어를 넣어서라도 최종학력에 대학교라는 단어를 넣고자 했겠는가?

이 사건 후 각 명문대학교의 학적과마다 자신이 알고자 하는 사람의 졸업 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폭주했다고 하니,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이나 학력위조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모두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 처음부터 그 사람의 작품이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사회 풍토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서도 특정분야의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모두가 학력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학력 위조에 대한 유혹도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학력에 대한 경직된 시선을 갖고 있는 셈이다. 능력과 결과물이 아닌 학력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입사서류나 이력서 등에 학력 기재를 하지 않고 성과물 위주로 기록하게 하는 방법을 도입해 보는 것도 괜찮을성 싶다. 업적이나 성과물이 아닌 학력과 같은 부수적 요인으로 사람을 평가하려 하면, 앞으로도 계속해 또 다른 신정아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정아·변양균 사건과 같은 종류의 기사는 앞으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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