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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낙엽

이태호<객원 논설위원>

일생을 대자연을 노래하며 꿋꿋한 기상을 지녔던 시인 설창수가 낙엽을 소재로 쓴 시 한편은 “그 힘은 어떤 것이냐/ 갓난아기 손꾸락보다 더 가는 것으로/ 서리 찬 벌판 모진 바람과/ 더불어 서있는 그 힘은…”이라고 시작된다. 낙엽이 지기 전 여린 가지로 무성한 나뭇잎을 떠받드는 가지, 그 것이 풀리면서 떨어지는 나뭇잎은 우주 안에서 생장소멸하는 뭇생물의 운명을 상징한다. 언젠가는 낙엽처럼 떨어지지 않는 생물이 어디에 있으랴.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우리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산길을 걸으면 자연과 내가 하나 된다. 온 산이 붉게 물드는 단풍의 숲은 설악산에서부터 서서히 남하하기 시작해 제주도에서 대단원을 이룬다. 붉은이란 형용사는 단풍을 상징하는 대표적 수식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단풍은 연두색에서 시작해 초록색을 거쳐 노랑, 빨강, 밤색으로 이어지는 나뭇잎의 일생 중 마지막 황혼을 불태우는 불꽃이다. 그것이 화려한 여운을 남기고 바람에 날리며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담백하다.

전남의 한 조그만 도시에 일을 보러 내려간 나는 이른 새벽에 이 글을 쓰기 위해 PC방을 찾아 나섰다. 수은주가 영하로 접근한 쌀쌀한 날씨에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거리에 늘어선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요동을 치면서 낙엽을 소나기처럼 쏟아냈다. 우수수 소리를 내며 45도 각도로 휘날리는 낙엽은 한 순간에 길을 따뜻한 색으로 물들였다. 낙엽은 아무도 없는 길을 밟고 지나는 나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벗한다.

우리네 삶은 낙엽처럼 간다.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도, 가진 것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사람도, 책 더미 안에 묻혀 학문을 연찬하는 사람도, 고운 목소리를 뽐내는 사람도, 붓끝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도, 자식들이 있지만 돌봐주지 않으려 해 홀로 거리를 헤매며 무료급식소를 찾아드는 빈민도, 병상에서 신음하며 병마를 쫓아내려는 환자도 때가 되면 정들었던 이승과 하직해야 한다. 자기 몫을 성실하게 다하고 낙엽처럼 말없이 따스한 체온을 남기며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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