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겨운 삶의 시련 딛고 청국장과 제2 인생 살라우”
◆스승없는 인생…쓰러지면 일어나고 거칠 것 없는 삶
‘SLK 푸드’ 장 황 사장(65)의 인생역정은 눈물겹다. 걸어온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한국전쟁 때 조부 부친 삼촌을 여의고, 증조모 조모 홀어머님과 함께 살았다. 4대 독자로 아홉 살, 한참 응석을 부릴 나이에 풍진 세상에 놓여 일찍 철이 들었다.
10리를 걸어 포천 이곡 국민학교와 의정부농고를 졸업한 후 곧바로 군대에 갔다. 65년 제대하면서 서울로 올라가 장사를 시작했다. 취업을 하지 않은 것은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월급으론 자신의 꿈을 도저히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썰미와 손재주를 타고나 당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자동개폐기’를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 철 대문을 실내외에서 버튼 하나로 열 수 있는 ‘아이디어’ 였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밀리며 양산 체제로 들어갈 즈음 한 자본가의 농간으로 기술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 떼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엷은 귀’ 때문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의 첫 사업은 이렇게 실패했다.
◆4대 독자, “내 인생의 코치는 오직 오기와 패기, 오뚝이 같은 승부욕 뿐”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 도전한 사업이 화공약품 제조업이다. 이 사업은 아무나 덤빌 수 없는 희소성 있는 사업으로 돈벌이가 괜찮았다.
수출 업체에 정기 납품하면서 솔솔 돈버는 재미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웠다. 예서 만족할리 없었던 그는 ‘불연성 접착제’ 개발에 나선다. “접착제는 유성과 수성이 있는데 가죽은 유성으로 해야 붙어. 그런데 유성접착제는 쉬 불에 붙어 화재가 우려됐지. 아직도 개발이 안됐어. 고무를 녹이는 용해제가 없거든” 낮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온갖 전문 서적과 기술자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수년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진척은 없었고 갈수록 통장의 돈만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80년, 그만 1천800만원의 부도가 나면서 또 한번의 좌절을 맞아야 했다. 당시 재계의 신화였던 ‘율산그룹’이 무너지며 납품업체의 연쇄 부도는 불가피했기 때문. 이후 불연성 접착제 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4년 재산을 탕진할 때까지 ‘올인’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88년 야반도주해 포천군 소흘읍 이동교리로 낙향했다.
◆또 좌절, 성공의 끝은 보이지 않고…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이때부터 그의 세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곤 운전밖에 없어 한 중소기업체의 출퇴근 버스기사로 일했지. 비는 낮 시간엔 보따리 장사를 했어. 밤엔 포장마차를 폈지, 잠은 천막에서 잤어” 그는 하루 수입 20만원이 되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더 번 돈은 반드시 불우이웃을 돕는데 썼다.
마을문고에도 책을 많이 사다가 비치시켰다. 그 공로 덕에 도지사 표창까지 받았다. 월 수입 600만원, 연수입 7천200만원, 자로 잰듯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성격이 2년6개월만에 ‘2억원’이란 돈이 모였다.
그 돈으로 1991년 포천시청 인근에 땅을 사서 식당을 지었다. 이름은 ‘싸리골 식당’. 콩요리 전문점이었다. ‘싸리골’은 매입한 ‘ㅁ’자 한옥 집 벽을 허물고 새로 쌓으려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천 지역에 흔한 싸리가지로 엮어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이름을 붙였다. ‘SLK 푸드’ 회사명도 ‘싸리골 식품’의 이니셜이다. “엄청나게 손님들이 많았지.
콩요리 전문점을 한 것은 어렸을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불린 콩을 멧돌에 갈아 두부를 만들던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서였어, 너무 맛있고 구수했지”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음식 장사를 하면서 ‘마음씨 좋은’ 그에게 돌아온 건 ‘알콜 중독’이었다. 5명의 지인들에게 빚보증을 서준 것이 영락없이 ‘화’로 돌아와 환갑이란 노년의 나이에 세 번째 시련을 준 것이다. 1년여 방황하고 그 추락한 아픔에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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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을 각오로 인생 막바지 청국장 환에 ‘올인’
2004년 그는 마지막 도전을 했다. ‘최대의 영광은 단 한번의 실패도 없는 것이 아닌 쓰러질 때 마다 일어서는 것이다’ 라고 다짐을 했다.
오랜 노하우를 살려 본격적인 ‘청국장 환’을 만들기로 작심한 것이다. “냄새없는 진품의 청국장 발효 과정을 아는데 꼬박 2년이 걸렸어. 처음에는 발효가 안돼서 고생을 많이 했어. 발효가 제대로 되려면 황토방에서 48시간 발효해야 돼. 그 황토방을 가는데 까지 무려 2년의 세월이 걸린 거지. 이제 시작이야. 난 자신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효과있는 ‘청국장 환’을 만들 자신이 있어 그는 올 2월부터 본격 영업을 시작해 최근 대형 할인점인 ‘홈 플러스’측과 계약을 맺었다.
판로 개척은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국내 수천개의 동종 영세업체가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큰 수확이다. “지난 15년은 콩에 미친 세월이었어. 콩 요리 전문점이 결국 이 사업을 하도록 안내한 셈이지. 팔자인가 봐. 청국장은 끓여 먹으면 우리 몸에 효과가 없어. 발효한 채 그대로 먹었을 때 ‘바실러스 섭티피스(고초균)’이 장내 부패균의 활동을 억제시키고 콜레라균이나 티푸스균 등 병원균에 대한 항균작용을 하지.
‘청국장 환’은 발암촉진물질을 감소시키며 유해물질을 흡착시켜 배설시키는 작용을 하는거야” 예순 나이가 믿기기 않을 정도로 그의 말투는 또렷했고 활력이 넘쳐 흘렀다. 그가 ‘4전5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집념과 의지도 강했지만 타고난 ‘낙천적’ 사고도 한 몫했다.
◆청국장 처럼 메마른 땅에서 홀대 받으며 영그는…
그는 포천문인협회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쓰고 있다. 그가 쓴 ‘싸리골 청국장’ 이란 시에 그의 인생관 사업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기름진 땅보다 / 메마른 땅 / 사랑을 담은 정성보다 / 홀대 받어야 / 알알이 영그는 나 / 긴 여름 끝에 / 이제 알몸으로 나온 나 / 옥수로 목욕시켜 / 거북잔등 가마솥에 / 참나무 불질하네 / 정해진 운명에 / 밤낮 삼일 / 미루나무처럼 긴 / 아픔과 고독을 견뎌 / 끈적이는 청국장이 되네 / 이제 싸리골 청국장 집에서 / 마지막 당신께 인삼 녹용보다 더 큰 / 건강 사랑 소망 행복에 꽃이 되며 / 당신께 알뜰이 바치리라 / 언젠인가 / 당신이 나를 부를 때 / 램프처럼 환한 당신 가슴에 / 아픔을 아픔이라 하지 않게 / 당신께 영원히 잠들렵니다” 그는 근래 ‘청국장 조미료’에 대한 연구 개발을 끝내고 곧 상품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내 첫 청국장 천연 조미료란 점에서 운때만 맞으면 ‘대박’의 기회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 소문을 듣고 국내 유수의 푸드업계에서 이 ‘제품’을 몽땅 사겠다고 사정하고 있다. ‘청국장 환’으론 승부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같이 한 발 앞서 신상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 실험중이야. 양산 체제를 갖추기 위한 기계도 최근 들여왔어. 살아있는 청국장을 먹기 위해선 조리가 끝난 각종 찌개에 이 조미료를 위에 얹으면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나며 건강을 돕는 거지” 그는 이 ‘천연 청국장 조미료’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만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인생 말년을 이 ‘청국장’처럼 누구나 좋아하고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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