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화장장이 불씨= 김 시장은 지난해 10월 시의회에서 “광역 화장장을 유치하고 그 지원금으로 2천억원을 받아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들의 동의없이 졸속으로 혐오시설을 유치하려 한다”며 범대위를 구성해 반대집회와 촛불집회, 소복시위, 항의방문, 시의회 예산통과 저지 활동 등을 벌였다. 범대위측은 “화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이 극소량이라도 인체에 치명적”이라며 “청정 하남의 환경과 이미지를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의회 예산통과를 저지하다 범대위 공동대표가 구속됐다 석방되고 시장과 주민, 공무원과 주민간에 번번이 충돌이 발생해 고소·고발전으로 비화되면서 혐오시설 논쟁은 정치적 대결양상으로 번졌다. 결국 범대위는 5월 주민소환법이 발표되자 주민소환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그 다음달에는 주민 105명이 집단 삭발집회를 가지면서 열기가 극에 달했다.
소환추진위는 7월 10일부터 김 시장과 그를 지지하는 시의원 3명에 대해 ‘광역 화장장 유치과정에서 보여준 독선과 졸속 행정, 시민의 대표자로서의 소양과 자질 부족’ 등을 들어 주민소환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에 들어갔다.
이어 소환추진위는 23일 주민소환법 시행 이후 최초로 3만2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하남시선관위에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했다.
◇끈질긴 법적대응= 주민소환추진위가 소환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김 시장은 7월 4일 서명요청 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제출, 법적 대응에 나섰다.
김 시장은 “광역 장사시설 유치 추진은 지역발전을 꾀하는 소신있고 적법한 공무집행 행위”라며 “주민소환은 제도를 남용하고 님비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남지원은 같은달 20일 “시장의 공무담임권과 직무집행권을 근거로 서명요청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며 김 시장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7월 23일 주민소환추진위가 선관위에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자 김 시장은 25일 주민소환법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주민소환투표가 청구되자 김 시장은 8월 17일 “서명부에 하자가 있다”며 수원지법에 주민소환투표 무효 가처분 신청 및 소송을 제기했다. 또 서명부 작성을 주도한 소환청구인 대표 등 7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중앙선거위원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법적대응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하남시선관위는 주민소환법상 예정된 일정대로 8월 31일 투표일을 9월 20일로 공고했다.
투표안 발의와 동시에 직무정지상태된 김 시장은 9월 10일 자신의 소환대책사무실에서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9월 13일 하남시선관위를 상대로 제기한 주민소환투표 청구수리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재판부가 김 시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투표(9월 20일 예정)는 무산되고 김 시장은 시장직을 회복했다.
◇원점에서 재추진= 주민소환추진위는 법원이 서명부에 하자가 있다며 주민소환투표 청구에 대해 무효판결을 내리자 반발하면서도 곧바로 재서명에 들어갔다.
소환추진위는 이어 10월 10일 주민 2만7천여명의 서명을 첨부해 주민소환투표를 재청구했다. 김 시장은 같은 달 30일 선관위를 상대로 ‘주민소환투표청구 수리처분 취소’ 소송을 수원지법에 또 한번 제기했으나 이번에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2일 전국 처음으로 실시된 주민소환투표에서 김 시장에 대한 소환이 무산되면서 김 시장과 주민들간 갈등은 표면적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정치인과 시민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골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또 다른 책임공방을 낳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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