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시평] 연극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일부 연출가 조건없는 예산 지원
관객들 자유속 가치인식 기회제공

 

올 가을 안산에서 공연하는 엘렉트라는 일본의 세계적인 연출가 스즈키 타다시가 연출을 맡았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호평을 받은 스즈키의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그의 정부를 향한 엘렉트라의 분노가 특유의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그려진다.

스즈키 메소드라는 독자적인 연기훈련시스템으로 유명한 스즈키는 미국과 독일, 러시아 등 여러 나라 배우들과 공연한 경험이 있다.

지난봄까지 시즈오카무대예술센터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한 그는 무엇보다 인구 500명밖에 안되는 토야마현의 작은 시골 토가예술촌에서 피나바우시를 비롯한 저명한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페스티벌을 펼쳐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토가페스티벌의 좌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엘렉트라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배우들이 9월 중 토가예술촌에서 연습을 하게 된다. 배우들의 현지 체재비를 모두 토가에서 부담한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프로듀서, 무대감독, 악사 등 일본 스태프들의 항공료와 한국 체재비도 마찬가지이다.

하이네 뮐러, 뤼비모프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함께 연극올림픽을 개최한 스타 연출가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 아무조건 없이 한국의 연출가들을 토가예술촌으로 초청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없는 프로그램에 예산을 투여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는 그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면 족하다고 태연자약했다.

이런 스즈키씨의 연극에 대한 얘기는 귀담아 들을만하다.

‘연극은 멸망해가는 장르’라면서 ‘모든 것이 경제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연극은 살아있는 인간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세계화라는 거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디지틀화, 오토메이션화의 대세 가운데서 연극은 인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아날로그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점점 관객이 줄어들고 있어 사양예술이라는 지적과 함께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 연극의 영속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보통 연극 1편을 제작하는데 소요되는 1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한국의 연극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힌트를 시사하고 있다.

제작환경이 열악하고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정책이 미흡하다는 연극인들의 지적은 100번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세계 연극사상 황금기를 이뤘던 프랑스의 몰리에르나 셰익스피어시대라고 해서 정부의 특별한 지원정책이 있지는 않았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갖는 위대한 극작가의 작가정신이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시민들이 즐길 만한 오락 프로그램이 적었고 요즘처럼 스포츠나 각종 빅 이벤트가 없던 시대상황도 한몫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쾌감을 안겨줄 뿐이다.

바로 여기에서 연극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연극은 세상이 아무리 자동화, 첨단화돼도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절감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이 제작시스템의 기본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눈부신 무대기술의 발전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이는 오히려 제작비 부담을 늘리는 요소일 수도 있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의상 그리고 첨단장비의 활용이 반드시 무대 완성도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연극은 아날로그라는 아름다운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객석 불이 꺼지면서 관객은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유로운 가상의 공간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때로는 지친 삶에 위로를 받아 용기를 갖게 되고 때로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연극은 이런 것이다.

모든 극장예술이 존재하는 가치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끊이지 않는 질문과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에 있다. 거짓말을 곧잘하는 정치인들이 공립극장이 돈 먹는 하마라는 비난을 하면서도 단체장이 돼 극장을 건립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자흥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