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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40>-이수동의 예술세계

 

이수동의 그림은 사랑의 아픔을 담거나 한 때의 동화 같은 추억을 새록새록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마치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손에 안은 것처럼 훈훈하고 정겨운 삶의 냄새가 담겨져 있다.

그는 밝은 그림만큼이나 항상 밝은 시인과 같은 화가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훈훈한 삶의 정취 화폭에 담다

중국 송나라 때의 걸출한 인물인 소동파는 대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인물이다. 그의 글과 철학 그리고 시는 ‘소동파전집’이라는 방대한 책으로 집대성되어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소동파는 예술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항상 그 실체를 그리는 데 최선을 다하였으며 그림과 시와 글을 동일시하였다. 시는 글로 이루어진 것인 반면에 그림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는 것인데도 그의 눈에는 모두가 같은 성질의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림은 곧 시일 수 있고 시는 곧 그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과 시 혹은 글이 동일하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겐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 중에는 문학적인 소양이나 철학 혹은 시심(詩心)을 바탕으로 한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림에서 노골적으로 시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부류의 대표적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는 이수동을 꼽을 수 있다.

시심을 느끼게 하는 이수동의 그림은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음직한 사랑의 아픔을 담거나 혹은 한 때의 동화 같은 추억을 새록새록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마치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손에 안은 것처럼 훈훈하고 정겨운 삶의 냄새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고나 할까. 이런 까닭에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수동의 그림을 쉽게 이해하고 선호할 수 있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듯 누구나 편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림인 것이다. 그 때문인지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수동의 그림 앞에 서면 가볍게 스쳐지나가지 않는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감어린 그림을 그리는 작가 이수동에게도 어렵고 서러운 무명시절이 있었다. 보수적인 화단으로 널리 알려진 대구 화단에서 그림을 그릴 때 늘 잔고가 부족한 통장을 보면서도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화가로서의 순수함과 정도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무명 시절이 길었죠. 대구의 정서가 워낙 보수적인데 제 그림은 감정이 막 드러나 있어서 잘 안 맞았어요. 처음에는 풍경에서 어찌어찌 하다 얼굴 쪽으로 넘어왔는데 하나같이 진짜 험한 얼굴들만 그렸어요. 열정은 있지만 가난한 청춘의 일그러진 초상 같은 것이랄까? 당시 제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죠. 하하!”

 

이 무렵 이수동의 화가로서의 삶은 어려웠고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으므로 작품들도 대부분 삶의 애절함을 담은 어둡고 무거운 것들이었다. 어느 날 그런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절친한 친구가 그를 돕기 위하여 그림 한 점을 사갔는데, 그 친구의 어린 아들이 그날 밤 화장실을 가다 마루에 걸린 그림을 보고 무섭고 놀라 울었다고 한다. 자신이 혼신을 다하여 그린 그림이 순박한 어린아이에게 두려움을 줬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더욱이 가장이자 무명 화가로서 힘들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터라 이수동의 마음은 무겁고 답답하였다. 자신의 그림세계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수동은 그림이란 자신만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보고 즐거워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좋은 시집을 보고 시심을 기르고 있으며 그의 밝은 그림만큼이나 항상 밝은 시인과 같은 화가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수동은 2000년의 텔레비전 드라마 ‘가을 동화’의 주인공 송승헌이 송혜교에게 그려준 그림의 원화를 그린 적도 있다.

그의 그림에는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풍류와 멋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향수마저 아련하게 묻어있다. 이수동의 그림은 작가와 자연이 하나가 되면서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음으로 소통하는 열린 장인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한 사람의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사람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에 대한 동경이 함께 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자연과 가까워지거나 자연이 인간과 가까워지기도 하며 인간과 인간이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수동은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고운 심성을 찾아주고 조탁하는 마술사와도 같은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콜링우드는 자연의 가장 근본은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은 아마도 순수한 시심(詩心)에 있을 것이다. 시심 가득한 이수동의 작품은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잡지사 기자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난 후에 인간 이수동을 보여주는 여러 메모들에 흥미를 보였다. 그의 작업실 현관문 안쪽에 있는 ‘꼭~ 나가야겠나?…아직 때가 아니다.…내공을 더 쌓고…’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시키는 작가의 비장함이 느껴진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대구 화가시절에 먹고 살기 힘들어 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골방에 갇혀 그림만을 그렸던 예술가적 기질과 순수함이 배어있다. 그의 땀과 노력은 그의 겸손함과 하나가 되어 앞으로 더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되리라는 기대감을 준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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