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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칼럼] 농진청 폐지 이대로 지켜만 볼 것인가

농업인 정보의 보고 농진청 새정부 폐지안 설득력 없어
기초기술 연구 축소 불보듯 350만 농민을 죽이는 행위

 

전국의 시·군에는 농업기술센터라는 곳이 있다. 농민들은 동사무소보다 이 농업기술센터를 내집 드나들 둣 한다. 이곳에 가야 새품종을 얻을 수 있고 또 재배법을 배워올 수 있다. 친환경 농업기술도 습득할 수 있다. 이뿐인가. 컴퓨터를 배워 사이버 영농도 가능해 졌고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 우리 농촌이 처해있는 현실 등 농업과 관련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끼리 만나 영농정보도 교환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도 해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농촌진흥청을 폐지하고 정부출연 민간연구기관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 농민을 비롯한 농민관련단체들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인수위는 이 기관들이 현행 정원과 직급, 보수체계로는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할 수 없고 연구개발에 필수적인 창의와 자율도 제약되며 정부조직으로는 특허권 획득, 기술개발에 따른 분사(스핀 오프) 등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인수위는 출연기관으로 전환해 정부의 엄격한 통제에서 벗어나 우수 연구개발(R&D) 인력의 처우를 개선하고 연구결과에 따른 인센티브와 특허권을 보장하는 등 대외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매년 정부가 안정적 재원을 출연해 농·임·수산업 진흥이라는 고유목적에 매진하게 되므로 출연기관이 영리기관으로 변질돼 농어민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도업무를 맡고 있는 농업기술원과 농업기술센터는 지자체 산하 기구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과 농민관련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농업인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회장 윤요근)는 성명서를 통해 “농촌진흥청의 우수한 기술을 제대로 보급받기 위해 시·군농업기술센터 활성화를 아예 법제화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와중에 아예 농진청을 폐지한다는 것은 농업·농촌 350만 농민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농업관련 전문가들은 연구 업무의 정부출연 민간 연구기관으로의 전환에 대해서도 ‘돈 안되는’ 기초 농업기술 연구가 지금보다 더 축소돼 농업인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국 종자를 사용하며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를 사실상 국내 연구기관에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앞으로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농민들의 농진청 폐지 반대 목소리가 농진청 홈페이지(www.rda.go.kr)를 통해 처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농진청 폐지 반대 카페가 등장해 네티즌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각종 일간지 찬반투표방에도 농진청 폐지반대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주말인 26일까지도 농민관련단체의 농진청 폐지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현재까지 각종 농민관련 단체와 농업대학교수 등이 발표한 농진청 폐지반대 성명서만 50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진청 관계자는 “농진청은 농업기술을 연구, 개발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개발된 기술을 편안하고 신속하게 영농 현장에 보급, 정착시키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개방화시대 임에도 세계무역기구(WTO)가 인정하는 정부 보조 허용사업”이라며 “경쟁력 있는 농업기술 개발과 효율적인 영농 현장 전파는 같이 굴러가야하는 두 개의 바퀴”라고 밝혔다. 농진청이 생긴지 올해로 102년째다.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농촌진흥청 탄생과정을 냉철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최초의 계획도시 수원은 정조대왕이 1799년 축만제(지금의 서호) 등의 저수지들을 축조하고 주변에 만년둔(萬年屯)과 대유둔(大有屯)이라는 국영농장들을 만들어 농사를 짓게 했다. 1906년 통감부훈령에 의거해 농촌진흥청(당시는 권업모범장)이 이듬해 농대가 수원에 설립·설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수원은 한국 농업의 메카라고 해도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수원시민들의 농진청에 대한 애착은 그래서 남다르다.

농진청 설립 이후 1970년대 들어 ‘녹색혁명’으로 통일벼 등 다수확 품종을 개발해 보릿고개란 용어도 사라지게 됐고 1980년대 비닐하우스를 개발해 가뭄극복과 다수확에 성공하는 백색혁명을 이루기도 했다. 농산물을 고급화 하는 수경재배법도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가 선진농업국으로 진입하게 됐다. 오늘날 식량자급화를 이룬 것은 농진청의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조대왕은 200년 전 수원 천도와 관련, 농경사회의 상징으로 수원을 한국농업의 중심지로 만든 것이다. 그 중심에 농촌진흥청이 있었다. 항상 뒷전이던 농민들의 얘기를 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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