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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산송장

이태호<객원 논설위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12년 일제가 조선의 호적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자 중국으로 망명해 ‘조선혁명선언’을 썼다. 항상 꼿꼿한 투지를 불살랐던 그는 이 글에서 “최근 (일제가) 3·1운동 이후 도처에 주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중략)”며 개탄하고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해 인간을 산송장을 만들려 하는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애자”고 외쳤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33인 중의 1명인 만해 한용운 선사는 일제 말엽 조선총독을 죽이려고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던 공주 마곡사 주지 송만공 선사가 심우장으로 찾아와 자문을 구하자 “죽어 가는 산송장을 죽여서 무엇 합니까. 더러운 업보(業報)만 쌓게 되니 그만 두시오”하고 칼을 빼앗았다. 만해는 의아해하는 만공에게 “이제 그놈들도 끝장이야. 얼마 안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형을 받을 것이니 이제 죽을 날 받아 놓은 것과 매 한가지야”라고 충고했다. 역사는 만해의 예언대로 진행됐다.

2008년 1월 25일 한국영화감독협회(이사장 정인엽)는 서울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된 영화진흥위원회를 해체를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영화계 편 가르기에 앞장섰던 문성근, 명계남은 영화계를 속히 떠나라”고 요구했다. 강대선 고문은 “극소수 정파의 영화인맥들만이 그 혜택을 독점한 채 90% 이상의 영화인들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산송장처럼 죽어지냈다”고 주장했다.

우리 민족을 산송장으로 만든 일제에 대한 단재의 적의(敵意)는 칼처럼 번뜩였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던 일제의 괴수에 대한 만해의 연민(憐愍)의 정은 바다처럼 깊었다. 이처럼 산송장은 주인공이 누구냐,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하늘과 땅처럼 갈라진다. 과연 10년을 산송장처럼 지낸 영화인들이 같은 기간 좌편향의 노선을 걸으며 영화를 누린 문성근, 명계남씨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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