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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서설 (瑞雪)

이태호 <객원논설위원>

“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 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이 시조는 유춘색이라는 사람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기생 매화와 가까이 지냈으나 나중에는 다른 기생 춘설을 가까이 하자 매화가 원망하며 지었다는 작품이다. 옛날에는 교양 있는 기생들이 빼어난 시조를 지었다. 춘설이 어지러우니 매화가 잘 필까 하는 우려도 없지는 않다.

차가운 북서풍이 할퀴고 간 들판에 우뚝 서 있는 매화가 꽃잎을 활짝 펴는 계절이 왔다. 매화 위에 쌓인 잔설은 오히려 바람을 잠재운다.

특히 눈송이 위에서 꽃망울 터뜨리는 설중매(雪中梅)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어붙었던 대동강 물도 풀리는 우수가 지난 19일 지났고, 겨우내 땅 속에서 잠자던 개구리도 튀어나오는 경칩이 3월 5일로 다가온다. 북풍한설로 인간과 대자연을 몹시도 괴롭혔던 겨울은 대자연의 도도한 질서에 따라 온천지를 연두색으로 물들이며 불어오는 산들바람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람들을 죄악으로 빠뜨리는 마귀는 흔히 혹한(酷寒)과 비수(匕首)에 비유된다. 구마(驅魔)를 소재로 한 영화 ‘엑소시스트’는 사제의 희생을 수반하면서까지 죄 없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결국 없어진다. 교회와 성당, 성지에도 출몰하고 사악한 인간을 충동질하여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들은 캄캄한 밤에도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과 봄은 반드시 온다고 철석같이 믿고 칼바람을 이겨내는 사람들에겐 맥을 못 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5일 오후부터 수도권에 큰 눈이 내렸다. 기상청은 중부지방에 3cm 안팎의 눈이 쌓였다고 말하고 서울과 인천, 경기 북부와 충남 서해안지방에 대설주의보를 발령했다. 밤새 쌓인 눈이 얼어붙으면 출근길의 시민들은 교통체증, 낙상과 탈골 위험 등에 시달린다. 꽃샘추위를 맞아 우리는 이런 점은 주의하자.

하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춘설이 아무리 차다한들 봄을 맞는 우리네 마음을 다시 얼릴 수 있으랴. 저 ‘난분분한 춘설’이 실은 고운 서설(瑞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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