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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승자독식과 패자부활

학벌주의 무한경쟁사회 풍토
소외계층 공정배려 제도 필요

 

“The winner takes it all(승리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은 197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스웨덴 출신의 그룹 아바(ABBA)가 부른 노래 이다. 1980년대에 고교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소위 일류대에 들어가기 위해 밤새도록 공부를 하곤 했다.

학벌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 감미로운 노래는, 역설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감미로운 노래는 사라지고 글로벌 경쟁이 승자독식의 세상을 강화시키고 있다. 2등도 안되며 오로지 1등만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모토로 되고 있다.

한 번의 시합만으로 이뤄진 승자독식의 세상은 우리 사회에 많은 위험을 초래한다. 일류대 합격의 여부가 인간의 브랜드를 결정하는 학벌주의는 사교육 열풍의 근본원인이다.

또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합격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시스템은 수많은 고시폐인과 ‘공시족’을 만든다.

즉 대학입시와 고시를 승자가 되기 위한 단 한 번의 기회로 생각하고 갖은 노력을 들여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사회는 한번 비정규직이 되거나 회사에서 쫓겨나면 정상적인 자리로 돌아오기 힘든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죽어라고 일만 하거나 노동조합의 비타협적 투쟁에 의존하게 된다.

이처럼 패자부활의 부재는 한번 선로를 이탈한 사람들이 정상궤도로 진입하는데 장벽이 되고 있다. 일류대를 들어갔다고 해서 능력이나 인격이 일류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고시를 합격하는 것이 법관이나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성실함에 대한 보증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아 일류대를 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뒤늦게 열심히 해서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반면에 학벌이 좋고 경력이 화려한 사람들이 무능과 불법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돈과 학벌, 배경과 가문을 갖춘 사람은 쉽게 승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패자부활의 부재는 실패와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참신하고 독특한 일을 창의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항상 실패의 위험이 뒤따른다. 실수나 실패를 용서해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 위험에 소극적인(risk-averse)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시도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부활의 기회를 줘야 한다. 다만 그러한 시도가 정당한 노력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편법이나 불법에 의해 이뤄지지 말아야 함을 전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패자부활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점점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식은 무한경쟁사회에서 패자로 전락한 소외계층에 대해 부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새로 촘촘히 구축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출발 라인이 다른 소외계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장벽에 부딪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보상에 치우친 과도한 배려는 진정한 패자부활전을 제공하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와 함께 비합리적인 편견과 차별관행을 제거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 행정·외무고시와 7·9급 등 국가공무원의 공채시험 응시연령 상한선이 폐지되고, 내년 3월부터 모든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에 고령자 응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이러한 조치들은 패자부활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승자에게 보상과 축하를 주면서도 패자에게 기회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회를 만들도록 하자.

이광희<정치학 박사, 한국행정연구원 국정평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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