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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43>-김구림의 예술세계

그의 작품에는 한국인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정신 및 가족에 대한 사랑과 훈훈함 등이 은은하면서도 깊게 스며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 여성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바로잡고자 하며, 더 나아가 따스한 인간애적인 감정과 본성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 바탕에는 한국의 가족간의 따스한 정의 문화와 예의 문화가 있다.

자유라는 시간앞에 서성이는 현대인의 ‘性’… 동양적 가치로 거침없이 내뿜다

 

필자가 화가의 꿈을 갖고 미술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그 때는 서양화, 동양화를 막론하고 작가들의 예술 정신이나 성향 및 작품세계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었다. 당시에는 중앙일보사에서 출간하는 ‘계간미술’이라는 잡지가 미술 전문잡지로는 유일하였다.

‘계간미술’이 많은 미술인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국내 유일의 미술잡지라서가 아니라 알차고 좋은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국외의 훌륭한 작가들도 가끔 소개되곤 하였다.

필자는 어느 날 이 잡지를 통해 대단한 화가 한 사람을 도판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그림은 마치 연필로 드로잉을 한 것처럼 간결하면서도 정갈스러웠다. 커다란 공간 속에 일부 표현된 형태들은 아직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지만 필자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당시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화가는 비디오아트의 대가 백남준과 함께 미국 챨리위쳐갤러리에서 2인전을 개최했던 화가 김구림이었다. 그 당시에 김구림이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라는 것을 잡지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예술세계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없었으므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었다.

 

그림 공부를 하는 어린 학생으로 하여금 화가로서의 어떤 미묘한 카리스마를 느끼도록 해주었던 김구림과의 인연은 이처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필자는 그로부터 대략 20여 년 후에 코엑스(COEX)에서 대한민국 국제 환경미술엑스포 예술총감독으로서 김구림을 초대작가로 초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일련의 작품을 가까이 대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서 그가 큰 예술가이자 전천후 작가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필자가 등단하여 미술평론활동을 하면서부터는 김구림을 언제고 심도 있게 다루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무산되는 일이 종종 생겨서 아쉬웠다. 깊이감과 함께 현란하면서도 다양한 화가 김구림의 그림세계와 한국 화단 속에서의 영향관계 등을 생각하며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평창동에 위치한 김구림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얼마만큼 그림만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업 세계는 하나하나가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시각에서 펼쳐져서 마치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패턴의 작품들은 짧은 동안에도 그의 작품의 역량과 정열 그리고 작품량을 넉넉히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는 거의 매년 일 년에 오백 점 이상의 작품을 합니다. 지금까지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개인 사정으로 그림을 못해도 삼백점 이하로 해 본적이 없어요. 일 년에 일백점 이하 작품을 하는 이들은 그림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하기 힘들죠.” 사실 국내의 화가들 가운데 일 년에 일백 점의 작품을 하는 화가들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물 것이다.

 

 

물론 구상일 경우나 혹은 작품을 하는 체질에 따라 작품의 양은 다르겠지만, 국내 작가들의 작품양은 외국의 대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게 사실이다. 더구나 김구림의 작품에는 수준 높은 작품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더더욱 그가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의 작업의 반경은 캔버스를 바탕으로 하는 평면 작업에서부터 다양한 오브제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폭이 넓고 시원시원하다.

그는 미국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할 때도 항상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활동하였다. 그의 예술가적 자존심은 곧 우리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녀를 외국인 만들기가 싫어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국내에 들어온 지 십여 년이 되어간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인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정신 및 가족에 대한 사랑과 훈훈함 등이 은은하면서도 깊게 스며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 여성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바로잡고자 하며, 더 나아가 따스한 인간애적인 감정과 본성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 바탕에는 한국의 가족간의 따스한 정의 문화와 예의 문화가 있다.

 

김구림의 작품은 오브제나 음악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무척이나 자유분방하다. 특히 70년대 무렵부터 선각자처럼 시작한 오브제 작업은 마치 음악의 리듬과 하모니를 지닌 율동처럼 다이내믹하고 경쾌하다. 그는 기존의 이미지나 물건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대상에 묶어두는 독특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시켜 왔다.

 

김구림은 차용과 변용, 키치와 같은 것을 통해 회화에서 음악을, 음악에서 회화를 창출해내는 한국의 전무후무한 작가라는 생각이다. 그가 담아 놓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뻥 뚫린 책 안에서 관람자들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갈만한 포르노의 사진들을 통해 우리의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을 꼬집기도 한다.

그는 이처럼 음악과 오브제를 통한 예술 세계를 넘나들며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의 한 예술가가 보는 현대의 문란한 성에 대한 시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김구림의 작품으로는 비단 이런 부류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충분히 소화할 만큼 대단한 미적 내공을 지닌 인물이라 생각된다.

오늘날에는 작가의 작품성이나 역량이 뛰어난 작가보다는 공모전 수상작가나 혹은 잘 팔릴만한 예쁜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이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일부 거대 화랑들은 작가의 수준이나 작품성들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과 특별하게 인연을 맺은 작가들만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마치 최고의 작가인 것처럼 컬렉터들을 호도하여 작품 가격을 흥행 위주로 몰아가고 있는게 한국 미술계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진정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장인정신으로 평생을 살아 온 김구림의 작품세계는 그의 깊게 내재되어 있는 예술가적 끼와 기질만큼이나 다양하며 정직하다.

작품세계에서만큼은 마치 천성적인 듯 한 곳에 머무르기를 싫어하는 김구림은 언제나 구르는 돌처럼 변화를 모색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하고 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경제와 문화가 빠른 템포로 변하는데 작가의 그림이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저는 어제나 그제나 십년 전이나 그림이 똑같아서 바뀌지 않는 작가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마저도 속이는 사기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은 작가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수롭지 않게 웃고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열정을 내포한 확신에 찬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술가적 끼와 노력으로 이룩한 그의 작품 세계가 한껏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글 = 장준석(미술평론가)

 

약 력
1971 제7회 파리비엔날레(파리시립미술관 프랑스)
1973 제12회 상파울로비엔날레(상파울로, 브라질)
1974 일본국제판화비엔날레(도쿄 국림현대미술관, 일본)
1976 제7회 까뉴국제회화제(까뉴, 프랑스)
1978 제4회 인도트리엔날레(뉴델리, 인도)
1981 제16회 상파울로비엔날레(상파울로, 브라질)
1984 제8회 영국국제판화비엔날레(런던, 영국)
1988 국제소형판화비엔날레(프랑스)
1990 침묵의 대화 서구일본의 정물화전 (시즈오카 현립미술관, 일본)
1992 시카고아트페어(시카고, 미국)
1992 김구림, 백남준 2인전(챨리위쳐갤러리, 미국)
1995 COLLBORATIONS전(L.A. VLACK갤러리, 미국)
1999 한국현대미술전(캔사스, 미국)
2003 드로잉의 새로운 지평(덕수궁미술관)
2005 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2007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국립혐대미술관)

 

수상
2006 제7회 이인성미술상 수상

 

작품소장처
베켄카운티미술관(뉴저지, 미국), 프랑크쿠르트 시민회관(독일), 이스라엘미술관(예루살렘), 홋가이도근대미술관(일본),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 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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