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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말만 많은 성폭력 대책

어린이 강력 범죄 잇따라 전자팔찌 등 예방책 봇물
문제해결 핵심지점 분석 性피해자 인권보호 필수

 

안양 두 여자어린이 살해사건을 필두로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등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 성폭력 관련 뉴스들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엄마들이 학교 앞에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면 절대로 도와주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또 준다.

 

한편 정부와 여당은 스쿨존과 어린이 놀이터 등에 CCTV 9,000개 추가설치, 등하교 도우미 제도, 전자태그 시스템, 어린이성폭력 전담센터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또 상습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고 어린이 성 범죄자에게 중형을 가하는 내용을 담은 ‘혜진·예슬법’ 추진 등 무수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특히 언론에서 매일매일 쏟아내는 전국적인 어린이에 대한 납치, 성폭행 사례들과 그로 인한 국민 불안 부추김 현상은 도를 넘은 듯하다. 성폭력 범죄는 호들갑을 떨면서 제도만 만들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성폭력 범죄가 일선 현장에서 얼마나 사소하게 취급되고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오히려 옹호함으로써 성폭력 가해자를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는가에 있다.

성폭력 범죄는 범죄 특성상 아주 은밀한 장소에서 일어나며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고 친밀함을 무기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선 현장에서 이런 특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는다면 개인 간의 사사로운 문제로 인식되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비난을 받는 이중의 피해를 입게 된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왜 거기까지 따라갔어?’,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서로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질문하는 순간 성폭력 범죄는 양산되는 것이다. 질문은 오로지 가해자에게 던져져야 한다. 안양 두 여자어린이 살해사건의 피의자 정모씨는 2006년 12월 전화방 도우미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 뒤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유는 피해여성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피해여성이 수사에 협조할 수 없었던 것은 피해여성의 직업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피해자의 연령, 성별, 직업, 인종 등이 피해판단의 기준이 된다.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 성폭력 범죄에만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성폭력 범죄가 행위 자체로서 평가되지 않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것이 비단 피해자 한 사람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가해자의 행위를 중단할 수 있도록 법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의 피해를 숨기고 개인적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지속적이고 점차 강도가 심해지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르도록 가해자를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는다. 나는 성폭력 범죄가 일선 현장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다루어지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CCTV를 10M 간격으로 만들어 놓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잡히더라도 피해 자체를 인정하고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한 그것은 무용지물이다.

 

무수한 대책들을 쏟아놓기 전에 문제 해결의 핵심지점이 어디인가를 먼저 살피기를 바란다. 최근 부모들의 등하교 지도나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주의사항은 새로운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대책의 초점은 어떻게든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없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등하교 지도를 할 수 없는 부모들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죄의식에 사로잡히겠는가? 또 아이들에게 공동체의 따스함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너무 가혹하다. 공동체성의 파괴로 인한 문제 뿐 아니라 자칫 아이들이 범죄 피해를 입을 경우 거절하지 못한 죄의식을 갖게 할 수 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폭력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일선 담당경찰들과 법 집행자들의 의식 변화가 필수적이다.

 

성폭력 범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주는 것보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교육과 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성인지교육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그 다음이 일어난 범죄에 대한 단호한 법집행이다.

김민문정<고양여성민우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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