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초대석] 김경수 팩컴코리아(주) 대표
[CEO초대석] 김경수 팩컴코리아(주) 대표
  • 한형용 기자
  • 승인 2008.04.15 20:40
  • 댓글 0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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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破竹之勢). 대나무를 쪼개는 모습처럼 맹렬하게 돌진하는 기세나 세력이 커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인쇄업계에서는 팩컴코리아(주) 김경수(49) 대표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됐다.

겉으로 드러난 하얀 피부와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한 번 결정하면 맹렬히 돌진해 목표를 완수한다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국내 인쇄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군포시 당정동에 위치한 팩컴코리아(주)(www.gopacifica.com)에서 김경수 대표를 만났다.

▲ 김경수 팩컴코리아(주) 대표
“국가 문화콘텐츠 성장 맞춰 세계 최고 인쇄업체 되겠다”

◆동종업계에서 벤치마킹하는 인쇄공장

군포시 당정동 일대는 화학공장부터 영세한 자동차 정비소까지 공장들이 빽빽하다.

아동책자와 고급양장본, 캘린더, 기업브로셔, 잡지, 상품 카다로그, 특수인쇄물 등 전문 인쇄물 제조업을 운영하는 중소제조업체 팩컴코리아(주)도 그 가운데 하나다.

팩컴코리아(주) 입구에 들어서자 종이를 가득실은 5t 짜리 대형트럭에서 지게차 2대가 종이를 쉴새없이 실어나르고 있다.

9천917㎡ 규모의 건물 지하에서는 윤전기 가동소리가 가득했고 각 층마다 사진감독반 등 각 부서 푯말이 내걸려 있다.

김경수 대표이사의 집무실은 4층, 직원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 사이로 유창한 영어대화가 간간히 들려왔다.

김 대표는 해외 바이어와 전화통화로 제품·시장평가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as people focus on more earnings expectations for 2009, they will look attractive...” (사람들은 2009년에 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죠. 여기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매력적 이라고 생각하죠.)

김경수 대표는 미국, 유럽,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 바이어들과 매일같이 통화하며 현지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점검하고 진행상황을 설명한다.

김경수 대표는 “인쇄업하면 영세함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편견일 뿐이다. 해외수출을 담당하는 직원만 20여명에 이르고 모든 공정을 공장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돼 다른 인쇄업 관계자들마저 우리회사를 방문해 벤치마킹한다”고 말했다.

◆‘교수’에서 ‘경영자’로의 변신

경희대 79학번. 사학교수를 꿈꾸던 29세 청년은 하루밤 사이 박사과정을 포기하기로 결정, 1988년 1월 (주)성인문화사에 입사했다.

결혼한 이후에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김경수 대표는 “결혼한 이후 작은 사고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아버지에게 의존했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담당 교수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사학교수의 꿈을 뒤로했다”며 “결심 한 이후에는 주변사람들이 미친사람같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자신 결심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김 대표는 (주)성인문화사 모든 직원들 앞에서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입사 6년여만에 미국 현지법인인 Sung In Printing America Co.LTD(SIPA)의 총괄이사로 승진했다.

하지만 (주)성인문화사는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심각한 자금난에 부딪혔다.

1천200억달러에 달하는 융자자금을 설비에 투자했지만 달러 가격이 급상승, 융자자금이 2배로 불어났다.

결국 (주)성인문화사는 경영악화로 부도를 피하지 못했다. 김경수 대표 역시 (주)성인문화사에서 퇴사해야만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포기할 수 없었다.

김경수 대표는 “당시는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가족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집도 홀로 거주할 수 있는 작은 곳으로 옮겼다. 1년 6개월여동안 TV도 보지 않았고 하루 3~4시간만 잠을 잤다. 나머지 시간은 영업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1999년 9월 팩컴코리아(주) 창업에 성공, 대표이사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04년 9월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주)성인문화사를 인수하고 신용보증기금의 BEST-PARTNER로 선정, 인쇄업계의 다크호스로 등장하게 됐다.

▲ 팩컴코리아(주) 직원들이 윤전기 가동상태를 점검하면서 인쇄작업 공정을 살피고 있다.

◆창업 4년만에 동종업계 평정

팩컴코리아(주)는 과당경쟁상태인 국내 내수시장 진출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해외시장에 대한 판로를 확대해 경쟁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김경수 대표의 선택이자 시대의 요구였다.

김경수 대표는 “시장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한 방법은 도전이라 생각했다. 좁은 국내 시장은 이미 과당경쟁상태였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승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컬러, 디자인 등 해외 바이어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이해하고 제품으로 무리없이 소화한 것이 팩컴코리아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팩컴코리아(주)는 창업 이후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통해 ‘인쇄산업’이 양질의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음을 현실로 보여준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설립 2년여만인 2001년 ‘3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이후 2002년 ‘500만달러 수출의 탑’, 2003년 ‘1천만달러 수출의 탑’의 주인이 됐다. 국내 인쇄업계에서는 창업 4년만에 동종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발돋움한 셈이다.

2005년에는 ‘2천만달러 수출의 탑’ 수상 영예를 안았으며 올해는 3천만달러 수출의 탑 수상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김경수 대표는 “팩컴코리아(주)의 성장 비결은 고객만족 경영으로 신뢰가 뒷받침된데 있었다. 특히 고객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경험과 자신감, 인력 등을 적절히 조화시켜 지금의 팩컴코리아를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좌절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해외 바이어들은 나를 믿어줬다.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준 바이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때마다 ‘당신을 믿는다’는 아내의 말이 기억난다. 미국생활에서 얻은 늑막염으로 고생할때 힘이 돼준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김경수, 팩컴코리아가 있다”고 강조했다.

▲ 팩컴코리아(주)를 국내 인쇄업계 1위로 일으켜세운 김경수 대표이사(가운데)와 직원들.

실제 1999년 창업 당시 한 바이어는 설비도 갖추지 못한 팩컴코리아(주)에게 60만달러의 사업을 발주하고 그중 30만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한 경우도 있다.

김 대표는 “현금으로 사업비 절반을 선뜻 내준 사례는 단 한번도 없던 일이다. 오직 ‘김경수’, ‘팩컴코리아’가 이뤄놓은 신뢰의 결과다”며 “이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의 단일업체와 3천만달러의 5년 장기계약을 맺어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고 말했다.

◆창업 10주년 목표, 5천만달러 수출

김경수 대표는 창업 10년 내 5천만달러 수출을 목표로 세웠다.

김경수 대표는 “창업 당시 ‘10년 5천만달러 수출’을 목표로 5명의 직원들과 결심을 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올해는 3천만달러를 목표로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며 “9부 능선을 넘는 기분이다. 힘겨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수출 5천만달러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했다.

이를위해 팩컴코리아(주)는 2002년 건립한 안산공장에서 제본과 포장 등의 피니싱 파트 공정을 활성화하고 있다.

또 1만3천㎡에 달하는 새로운 공장 신축도 계획 중이다. 특히 해외영업팀을 전체 200여명의 직원 중 10% 20여명으로 배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세계시장의 생생한 움직임을 파악해야 업무실적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위해 사업초기부터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대규모 인쇄관련 행사와 중소규모의 대회까지 참가, 각국의 바이어들을 만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각국에서 발행되는 각종 인쇄관련 잡지를 수집했다.

인터넷으로 세계 인쇄업체의 동향을 살펴 이를 수출로도 연결했다.

◆인쇄산업은 국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

김경수 대표의 장기목표는 공장의 업무실적 향상보다 우리나라 문화를 반영할 수 있는 인쇄산업의 발전이다.

김경수 대표는 “인쇄산업은 국가의 문화콘텐츠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인쇄산업이 국가 기관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영세한 산업, 3D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인쇄는 국가 문화콘텐츠 성장과 일맥상통한다. 문화의 모든 콘텐츠는 인쇄물로 제작돼 수요자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특히 기성품이 없다. 주문자의 주문사항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글자와 사진들이 살아움직이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김경수 대표의 이같은 신념은 팩컴코리아(주)를 국내 동종업계 1위로 올려세운 저력의 밑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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