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석의 작가탐방<47>-진원장의 예술세계
장준석의 작가탐방<47>-진원장의 예술세계
  • 경기신문
  • 승인 2008.04.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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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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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장의 작품에 가끔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을 눈여겨 볼 때가 있다.

그 여인은 실제의 여인이 아니라 진원장의 마음에서 표현된 상상의 여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전형적인 구상 작업을 하던 작가가 그려낸 이 여성이 환상과도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지니며 풍부한 감성으로 여과 없이 다가왔던 것이다.

그를 계기로 해서 필자는 진원장이 상상력과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시적 감흥의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작가 진원장
필자가 고등학생시절에는 그림에 흠뻑 빠져서 여러 전시장을 정신없이 기웃거렸었다. 그 즈음에 어느 그림을 골똘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라도 광주의 도청 옆에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였다.

전시장의 많은 그림들 속에서 다소곳하면서도 조금은 냉정할 것 같은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무표정한 얼굴에 굳게 다문 입술이 무언가를 넌지시 말하는 것 같았는데, 실제 모델을 보고 그렸는지, 아니면 화가가 상상하여 만든 가공의 여인인지 궁금증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 후로 얼마간은 그 독특한 여성의 이미지를 가슴에 담고 다녔었다.

지금도 필자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진원장의 작품에 가끔 등장하는 이 여인의 모습을 눈여겨 볼 때가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미지 면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그 여인은 실제의 여인이 아니라 진원장의 마음에서 표현된 상상의 여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전형적인 구상 작업을 하던 작가가 그려낸 이 여성이 환상과도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지니며 풍부한 감성으로 여과 없이 다가왔던 것이다. 그를 계기로 해서 필자는 진원장이 상상력과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시적 감흥의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구수하고 질박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진원장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필자의 대학 은사님을 통하여 수년 전에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였다. 그날 전라도 함평의 어느 바닷가에서 해질 때까지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필자는 그가 여리면서도 투박한 예술가적 성품을 지녔다고 느꼈다.

지금도 필자는 그림 안에 등장하는 여인네들을 볼 때면 진원장의 작품을 떠올리곤 한다. 얼마 전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는 봄비가 을씨년스레 내리는 와중에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때였다. 세월이 묵은 흔적이 다소 느껴지는 적지 않아 보이는 작업 공간에 자리한 구불구불한 긴 연통이 인상적이었다. 왠지 시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이 쏟아질 것만 같은 작업 공간은 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이미지와 닮아보였다.

진원장의 펼쳐져있는 그림들을 보며, 그의 적잖은 세월의 화력을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40여 년이 넘게 줄곧 묵묵히 그림만을 그려온 그는 이제 환상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서정적인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화가라 할 수 있다. 1999년 말부터 아프리카 등지로 그림여행을 떠난 후부터 그에게는 심적인 변화가 있었다.

▲ 꿈3 73x61cm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자연의 웅장함과 위대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그 엑기스를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그는 자신의 붓 끝에서 약동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무렵부터 진원장의 그림은 보다 인간적인 정이 넘쳐나는 환상적인 색채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제목에는 더욱 환상적이고 편한 이미지로 ‘어머니’나 ‘꿈’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사람들은 진원장의 작품에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부드러운 색감들과 포근한 형태미를 공유할 수 있다. 필자는 얼마 전에 경기도의 한 미술관에서 ‘정예 작가 베스트 16인전’을 기획한 바 있다.

여기에 출품된 진원장의 작품은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대단히 부드럽고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마음의 고향을 그려내듯 포근한 조형성은 모든 자연의 대상물을 한올한올 풀어헤친 것 같았다.

그의 작품인 ‘고향의 정원’이나 ‘어머니의 땅에서’ 등은 고향이나 어머니가 지닌 정감을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원장의 그림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나 꿈을 바탕으로 한 시의(詩意)나 시정(詩情) 어린 그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사춘기 때 봤던 초기 작품에서의 구체적인 형상들은 사라지고 없으나, 내면의 세계에 중심을 두고 시공을 초월하여 형상을 풀어헤치는 무게 실린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요즘의 화가들은 단지 섬세한 필의 사용이나 강렬한 색의 사용만으로 자신의 그림이 높은 경지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잖다. 최근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면서부터 적지 않은 그림들이 미술시장이나 화랑에 선보이고 있다. 어떤 작가는 평소와는 다른 경향의 그림을 스스럼없이 그리며, 또 어떤 한국화가는 본업이었던 한국화를 한순간에 제쳐두고 강렬한 색감과 터치의 유화를 스스럼없이 그린다.

동물 그림이 잘 팔린다 하면, 당나귀 등 동물 그림을 몽땅 그려내는 웃지 못 할 일도 있다.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라고 해서일까. 이처럼 상업성을 우선으로 하여 거리낌 없이 그려내는 작업실은 그야말로 그림 공장을 방불케 한다. 화랑들 역시 이들 작가들이 대단한 작가들인 것처럼 홍보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진솔함의 결여에서 오는 부작용을 인식하지 못함은 참으로 커다란 병이라 할만하다.

진원장의 그림은 색채가 강렬하지 않고 섬세한 필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인정 많고 여유로운 선비의 그림처럼 넉넉하고 후덕하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에는 함부로 그리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간솔미(簡率美)가 흐른다. 누가 한국미를 ‘무기교의 기교’라 했던 것처럼, 아니 ‘구수한 큰 맛’이라 했던 것처럼, 진원장의 작품에서는 곳곳에서 천진난만함을 만날 수가 있다. ■ 글 = 장준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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