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식칼럼] 농진청 인적쇄신안
[이창식칼럼] 농진청 인적쇄신안
  • 경기신문
  • 승인 2008.04.30 22:32
  • 댓글 0
  • 전자신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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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직원 107명 퇴출 후보 정부 무용론·폐지론 거론
200여년 전통 위대한 역사 반성하며 환골탈태 계기
농업진흥청(이하 농진청)이 중앙부처 외청(外聽)으로는 처음으로 인사 평가에서 하위 5%에 든 직원 107명을 퇴출 후보로 선정한 인사쇄신방안을 발표했다.

퇴출 후보로 지정된 107명(박사 학위자 45명 포함)은 이달 6일부터 농진청 산하 한국농업대학 농업현장기술지원단에 배치돼 6개월간 조류인플루엔자 방제작업, 산불예방 캠페인 등 잡무에 종사하게 된다.

6개월 뒤 실시되는 재평가에서 호평가를 받으면 살아남지만 저평가를 받게 되면 퇴출을 감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평가 하위 5~10% 안에 든 98명에게도 경고 조치가 내린 상태이기 때문에 퇴출 후보나 경고 대상에 오른 직원들은 철퇴를 맞은 심정일 것이고, 퇴출 후보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안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조가 가만 있을리 없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농진청지부가 하위직만 희생양으로 삼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쇄신안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지만 농진청은 퇴출자 수로 보면 하위직이 많으나 재직자 대비로 보면 상위직이 더 많다며 노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제 퇴출자 상, 하위직 논란은 큰 의미가 없다. 농진청이 개청이래 초유의 인적 쇄신안을 내놓기까지의 배경과 구조조정을 위해 최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원인, 그리고 그 결과가 가져다 줄 농진청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퇴출 후보들은 6개월 후 재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생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왜 자신이 무능한 공직자로 평가 받았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알다시피 농진청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 연구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며 폐지하고 정부 출연기관으로 전환하기로 방침을 세운 바 있었는데 통합민주당 등이 반대하는 바람에 18대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미뤄 놓았을 뿐 이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인적쇄신안을 발동시킨 가장 큰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폐지 대상에 오른 오명을 씻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지구책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기사회생(起死回生)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농진청은 60년대에 녹색혁명을 일으켜 쌀 자급자족의 계기를 마련한 이래 몇가지 괄목할만한 연구 실적을 나타내긴 하였다. 그러나 그런 자아도취 탓인지 최근의 연구는 다양한 농업기술시장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마침내는 무용론 내지는 폐지론까지 불러 오고 말았다. 어쨌거나 농진청은 이번 인사쇄신안을 완성함으로써 농생명과학 연구의 두뇌집단으로 거듭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왕 농진청 개혁이 화두에 오른 터라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농진청 이전 및 폐지와 관련해 익히 알려지지 않은 역사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오늘날 농진청은 한말인 1906년 4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을 시원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이태 전 100주년 기념식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권업모범장이 설립되기 209년 전에 있었던 전사(前史) 부분이 빠져 있어서 유감이다.

수원 신도시를 건설한 정조는 1795년 지금의 조원동에 만년제(萬年堤)와 대유둔(大有屯)을 설치한데 이어 1799년 서호로 알려진 축만제(祝萬堤)와 서둔전을 만들어 농업용수 공급과 농경지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왕실 예산 200냥을 들여 농경우 10마리와 화성 성역 때 쓴 소 32마리를 농가에 나누어 주어 가뭄, 풍년 농사를 짓도록 도왔다. 또 논 농사를 짓는 농민의 명단과 경작 면적 등을 기록한 토지대장을 만들어 둔도감(屯都監)과 마름 등의 부정이 끼어들 수 없도록 투명성을 뒷바침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의 농진청은 정조의 선진농법 도입과 실천에 의해 그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익히 아는 일제는 정조의 위대한 애농정신과 민족 역량을 말살하기 위해 난데없는 권업모범장을 만들어 저들의 치적(治績)으로 둔갑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농촌진흥청을 없애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위대한 역사와 전통을 잘라내는 것이고, 역사의 영속성과 민족 내지는 수원시민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다.

정부는 농진청을 강력하게 개혁시키되 폐지나 이전을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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