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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다문화가정 위한 지원정책 절실

이주여성 적응교육 부족 가정폭력 등 문제점 발생
꾸준한 지원 생존권 보장 자립지원센터 확충 필요

 

며칠 전 지역사회에서 개최된 다문화가정 한마음축제에서 만난 결혼 6년째 되는 한 베트남 여성은 자신의 모국어인 베트남어로 자녀들을 교육하고 싶어 하지만 베트남어 교육자료들이 부족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8세 아들을 두고 있는 필리핀 여성 마리아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시어머니로부터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며 구박을 받기도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만들고 싶었지만 배울 수가 없었으며 남편은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도 술에 취하면 아내를 원망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갖고 오는 ‘알림장’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고, 물어보는 숙제도 도와줄 수가 없다. 마리아가 이주여성들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의 생활은 이주여성이 한국에 시집와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서러운지를 보여준다.

이주여성들은 결혼 초기엔 남편이나 시댁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모성을 표현할 수 없어 고통을 겪는다. 2006년 당시 여성가족부가 이주여성 엄마들에게 ‘자녀를 기르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물었을 때 베트남과 필리핀 엄마 10명 중 8명이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처럼 대접받는 일부 외국어를 빼면, 한국말만 하기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도 힘들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까워야 할 엄마와 자녀 사이에 장벽이 생기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이름을 물었을 때 “모른다”거나 “이름이 길어서 싫다”고 답한 아이들도 있었다. 유아들의 언어감각은 보통 3세 이전에 형성되는 데 집에서 주로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에게 한국어교육을 강요하게 되면 2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사회에서 다문화 가정 등장은 1990년대 초 정부가 중국 연변처녀와 결혼 적령기를 지난 농촌 노총각간 결혼사업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은 왜곡된 성비례로 결혼을 못한 남성의 급증과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적 여건이 낮아 한국 여성과 결혼하지 못한 남성의 입장을 고려해서였다.

그러나 이후 국제결혼이 별다른 창업자본 없이 고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국제결혼중개업체가 급증하고, 여기에 일부 종교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중개업체 난립으로 이어졌다. 가정폭력 등 다문화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해결의 시발점은 이런 업체난립에 대한 개선 의지와 여성결혼이민자들을 향한 사회 전반의 인식전환이 맞물리면서 진행되어야한다.

2003년 이주여성폭력실태 조사 이후 국제결혼여성에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어교실이니 한국문화교육이니 하면서 적응교육이 시작되었다. 지원의 지속성이 없었고 이름만 바뀌었지 대부분 한국사회 적응교육이 중점이었다. 당장 불끄기식의 지원보다 앞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꾸준한 지원과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구체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다문화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 차이점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다문화 열린사회를 준비하는 일은 심오한 휴머니즘의 철학이 아니라 세계화시대에 한국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한복을 입힌다고 한국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 듯 지금의 다문화가정의 지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다문화가정은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가정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국사회에서 이미 한국인으로서의 첫 번째 문화를 접할 것이며 이들의 정체성에서 문화가 서로 다른 부모에 의해 두 번째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이다.

 

또 그들에게 일방적인 한국문화 흡수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이주여성들의 문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양성평등을 위한 지속적인 남편교육은 물론 언어와 생활문화교육, 경제활동을 위한 경제교육과 인력양성교육을 위한 여성결혼이민자 자립지원센터의 확충이 필요하다.

다문화가정 지원정책은 다문화가정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다문화가정 스스로도 단순한 요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책입안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김경우<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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