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그리는 진정한 자유인 허진은 한국의 전통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 문명의 폐해를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개인의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현대 문명의 폐해를 인간과 동물 혹은 독특한 시각의 산수를 통하여 깨우쳐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우주 자연을 지배하려고만 하는 인간이 아닌,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인간으로서의 친화적인 삶을 꿈꾼다.
이러한 꿈은 여리고 고운 예술적 심성을 지닌 허진의 감성을 통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 마치 산 속의 청량한 공기처럼 마음에 다가온다.
예향의 고장인 전라도는 예로부터 ‘남종 산수화’의 본거지로도 여겨져 왔다. 이는 서울이나 수도권의 화가들 못지않게 활동하는, 담아하면서도 선비 기질을 지닌 화가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전라도에는 소위 ‘전통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전라도가 이처럼 ‘전통 문인산수화’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데는 소치 허유로부터 미산 허형, 남농 허건 등으로 이어지는 허씨 일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우리와 동 시대를 살았던 남농 선생은 담아하고 맑은 심성을 지닌 분으로서, 우리나라 산수화의 수준을 높여준 화가로 알려져 있다. 남농 선생의 장손인 허진 역시 할아버지의 맥을 이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데, 한국화를 보다 현대적으로 그리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잘 팔릴만한 그림보다는 참신한 작품성과 예술정신을 담은 그림을 위해 붓을 든다.
필자는 허진을 오래 전부터 관심 있게 보아오면서 어떤 면에서는 똑똑하면서도 고독한 화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는 이름난 화가로서 대를 이어온 집안에 대한 일부 작가들의 견제 심리와 화상들의 상업주의 등이 원인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초연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작품성을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랜만에 허진의 차를 타고 가며 그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작업실에 도착하였다.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 등이 한 눈에 보이는 작업실을 보며, 그의 그림에 산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예전에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는 밤이었기에 그의 화실 옥상이 그림처럼 좋은 전망을 제공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
탁 트인 시야를 보면서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과 책, 그리고 물감 등이 뒤엉킨, 조금은 아담한 작업 공간은 멋진 산세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있었다. 산들이 좋아 일부러 그곳에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는 허진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허진은 뼈대 있는 화가 집안으로서 운림산방의 전통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어왔다고 하는데, 작품은 의외로 할아버지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경향이다. 시간이 꽤 걸리게 보이는 그의 화법은 남농이 즐겨 쓰던 전통 산수의 기법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예술 정신을 흠모하면서도, 그 화풍과 기법만큼은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노력
과 고민을 해왔다. 그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을 독창성 있는 화법으로 그려낸다. 할아버지의 정신은 이어 받되,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허진은 ‘진정한 예술가적인 삶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인의 고달픈 삶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수 있는 게 그림이라면, 허진이 말하는 ‘진정한 예술가적인 삶’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 될 것이다.
그는 또한 ‘작품이 팔리는 정도에는 관심이 없으며, 반골 기질이 있어서인지 남이 좋다고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도 말하였다. 그는 ‘훗날 미술사에 남는 작가다운 작가로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덴티를 찾고 싶다,’고도 했다.
필자가 얼마 전에 용인의 한 미술관에서 기획했던 전시회에서의 허진의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은은한 듯 하면서도 깊은 맛이 흘렀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 걸린 여러 작품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는데, 이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강렬한 색채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시각에서의 그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잘 팔기 위하여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내면의 이미지를 자유롭고 자신감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작품은 보면 볼수록 깊은 맛과 묘미를 주는 강점을 지니게 마련이다.
허진은 한국의 전통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 문명의 폐해를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개인의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현대 문명의 폐해를 인간과 동물 혹은 독특한 시각의 산수를 통하여 깨우쳐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우주 자연을 지배하려고만 하는 인간이 아닌,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인간으로서의 친화적인 삶을 꿈꾼다.
이러한 꿈은 여리고 고운 예술적 심성을 지닌 허진의 감성을 통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 마치 산 속의 청량한 공기처럼 마음에 다가온다. 허진이 대중들에 영합하는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는 까닭은 이처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진정한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속세를 떠난 듯이 때 묻지 않은 묘미(妙味)의 경계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진은 수식과 장식으로 치장되고 정형화되는 것을 멀리하며, 자연의 섭리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참 자유인이자, 자신의 그림처럼 자연 속에서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울리기를 염원하는 자연인이라 하겠다.
이는 선조로부터 산수화를 그리며 추구해왔던, 자연과 더불어 숨 쉬는 자유함과 투박함이 작품에 막걸리처럼 텁텁하고도 정겹게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막걸리와도 같은 이러한 진진묘(眞眞描)의 맛인 무미(無味)함은 색채나 형태가 강하거나 쌈빡하진 않으면서도 작품 속에서 은은하고 깊은 맛으로 흐른다.
■ 글 = 장준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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