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초대석] 임재수 (주)신영이엔씨 대표이사
[CEO초대석] 임재수 (주)신영이엔씨 대표이사
  • 한형용 기자
  • 승인 2008.05.20 19:25
  • 댓글 0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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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영이엔씨 임재수 대표이사는 공공시설물의 안전진단과 유지관리 사업을 추진하는 젊은 CEO다. 올해 나이는 만 35세. 대표이사가 젊은 만큼 직원들도 젊다. 23명의 직원 중 20대는 1명, 40대와 50대도 각각 1명뿐이다. 나머지 직원은 모두 30대다. 하지만 상당수 직원의 경력은 7년~15년차 이상이다. 젊다는 것은 이른바 ‘유쾌·상쾌·통쾌’로 일컬어진다.

반면 미숙하다는 단점도 뒤따른다. 젊음의 단점을 패기와 전문성으로 극복하고 안전진단 분야의 주춧돌이 되고 있는 (주)신영이엔씨 임재수 대표이사를 성남시 중원구에서 만났다.

“공공시설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 임재수 (주)신영이엔씨 대표이사
◆젊음의 패기로 무장하다

임재수 대표는 스스로를 연륜과 경험으로 무장돼 있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젊음을 강조하며 신기술 개척의 도전 정신을 역설한다. 안전진단 분야는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세계이며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한 걸음 전진해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갖추어 놓은 연륜과 경험은 새로운 기술 앞에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정신은 또 다른 미래를 만들고 꿈을 실현한다.

임재수 대표는 “시설물 안전진단 분야는 노무비용과 기술력만이 소요된다. 그만큼 기술력이 뒤따르지 못하면 업계에서 도태되고 만다. 한 교량을 측정하더라도 외주업체를 통해 연구분석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진행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때 내세웠던 공약인 ‘서울 시내 100t짜리 대형트럭의 이동’을 이룰 수 있던 원동력도 ‘젊음’에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지역은 15t 덤프트럭만이 이동이 가능했다. 서울시내 교량들이 재하시험 결과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진단 과정에서도 100t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보수하는 업체도 없었다. 잘못된 안전진단으로 교량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도 산재했다. 안전진단 업계에서는 이를 해결할 기술력이 부족했다.

임재수 대표는 “교량들의 재해시험 결과 30t에 달하는 덤프트럭들이 지나다니기엔 무리가 많았다. 이에따른 경제적 손실도 상당했다. 한밤중 대형덤프트럭이 서울시내 한복판을 질주했다. 연료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 모두가 교량건설을 위해 뛰었다. 성공할 경우 안전진단 업계에서는 ‘기술력 최고’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주)신영이엔씨는 2005년 서울시내 9개 노선에 100t에 달하는 트럭들이 이동할 수 있는 교량을 완성했다. 서울 양화교, 길음교, 수서IC교 등이다. 단순히 ‘된다, 안된다’가 아니다. 젊음의 도전정신이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입증된 순간이다.

▲ 열차가 이동하는 교량에 센서를 설치한 후 시험열차가 통과할때를 맞춰 거동을 측정하고 있다.
◆퇴직금 300만원으로 창업

(주)신영이엔씨는 2002년 2월 2일에 사업자등록증을 받았다. 종목은 토목건설, 안전진단 및 점검, 철물공사, 시설물유지관리 등이다.

임재수 대표는 “직원들의 추첨으로 신영이엔씨 상호를 만들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눈 직원들이 신영이엔씨를 세운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주)신영이엔씨의 출발은 지오테크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6월 29일 삼풍 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가 잇따를 때였다. 임재수 대표는 1995년 한국건설품질연구원에 입사했다. 이후 1996년 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로 이직했다. 하지만 국제외환위기는 전국 안전진단 회사들의 자금사정을 악화시켰다.

안전진단 업계는 교량점검에만 3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자금이 들어오는 기간은 적어도 1달여 이상이 필요, 길게는 6개월정도까지 자금순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안전진단 업계의 주문량은 폭주했지만 자금순환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는 회사들도 늘었다.

임 대표는 “국제외환위기는 안전진단 업계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의 문을 닫게 했다. 그래서 자금이 아닌 기술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회상했다.

지오테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임재수 대표는 1998년, 퇴직금 300만원으로 노트북과 프린터를 마련했고 집에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임 대표는 “카니발 차량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택시와 다를 바 없었다. 낮에는 광주시에서 교량을 진단했고 밤에는 대구에 올라와 철도길을 살펴봐야했다. 1년6개월여만에 18만㎞를 뛰었다”고 말했다.

◆‘돈’이냐 ‘성공’이냐의 선택

지오테크 창업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국제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창업 1년 전이다. 월급쟁이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사업을 시작해 성공할 것인지의 갈림길 이었다.

당시의 선택은 사업이었고 10세의 첫째 아들과 7세의 쌍둥이 딸, 아내,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임재수 대표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사업은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내와 1997년 결혼한 이후 사업을 선택했다. 아내는 나를 믿었다. 나는 젊음을 믿었고 직원들을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덕분에 지금까지도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일한다. 그렇게 때문에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주)신영이엔씨는 오후 6시 이후 시간을 활용해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업을 선택한 임재수 대표의 가정은 상당한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1998년 창업 이후 혼자서 지오테크를 운영, 가정을 돌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재수 대표는 “어느날 교량조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아들을 이불로 꼭꼭 감싸놓고는 전기장판위에 올려놓았다. 아들 돌반지마저 사업자금으로 돌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 GPR 장비를 이용해 터널 내부의 공동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안정적인 성장궤도 진입

(주)신영이엔씨는 2002년 2월 창업 이후 1년여만인 2003년 5월 26일 안전진단전문기관으로 등록됐다.

분야는 교량 및 터널의 안전진단과 수리다. 올 3월에는 기술보증기금이 인정한 벤처기업이 됐으며 4월에는 (사)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기업부설연구소인정서를 획득했다.

교각 세굴방지물 및 설치방법과 조립식옹벽유닛 및 이를 이용한 사면공법 등의 주요 특허도 확보한 상태다. 지난해 매출액은 14억원 수준. 올해는 상반기에만 매출액 8억원을 상회했다. (주)신영이엔씨가 보유한 장비도 상당하다. 철근탐사기, 초음파 탐지기, 중성화 측정기, 지반투과레이더(GPR)장비, 금속관 탐지기 등 24가지에 이른다.

이중 GPR장비는 1억2천만원을 호가하는데다 다룰 수 있는 인력이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신영이엔씨는 이같은 진단장비와 인력을 바탕으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곳곳의 교량 및 터널을 조사, 수리하고 있다. 성산3교 초기점검, 낙동강대교,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조립2공장, 아차산 배수지 등 4개 배수지, 평택 공군부대의 유류탱크 세척, 판교IC, 화성 송산교, 양주 암매교, 국도3호선 주내육교, 김포대교 등 7개교, 국도1호선 통일대표 등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한 바 있다.

또 분당 효자촌 지반공동조사, 소양강댐 여수로 등의 지반탐사와 잠실1단지 재건축 아파트, 오산시 외삼미동 전원주택 신축공사 사면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수지 신봉동의 골프연습장 택지 조성 가설계와 국도35호선 혈천지구 위험도로 개량공사 실시 설계 등도 실시했다. 지금은 부산의 수영2호교와 성남의 운중저수지 등 10여건의 안전점검 등을 동시 진행중이다.

임재수 대표는 “젊음의 패기는 또 다른 도전을 의미한다. 특허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연구사업을 통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도 도전이다. 기술장이들은 항상 현장에 나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기술개발을 위한 고민을 한다. 회사의 성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람의 안전을 꿈꾸고 싶다”

(주)신영이엔씨는 회사 대표이사와 점검 1팀장, 2팀장 등 직원들간의 직제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는다. 다만 역할에 대한 몫을 확실히 할 뿐이다.

임재수 대표는 “대표는 특별하지 않다. 똑같은 월급쟁이로서 먼저 살아봤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며 “대표는 직원들이 벌어오는 돈을 복지로 돌리는 방법과 직원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판단하는 역할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회사 방침에 따라 상당수 직원들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회사가 직원들의 등록금을 마련해줬고 시간도 배려해준 결과다. 또 보너스는 경력이나 직급에 따라 차등지급하기 보다는 결혼 유무를 기준으로 나눈다. 직원들도 회사의 이같은 조치를 사회복지차원에서 맞다고 판단하고 있다.

임 대표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직원들이 공부해서 기술력을 배가한다면 회사에게도 큰 이득이 된다. 회사도 직원의 직무능력을 개발시켜 보다 정확한 점검을 할 수 있다면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직원들의 소유가 되고 직원들은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임재수 대표는 “40세까지만 일하고 싶다. ‘재력’의 성공은 완전하지 않다는 신념이다.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한 이후에는 사회봉사활동으로 여생을 마치고 싶다. 어머니께서 성남 모란시장 한복판에서 팥죽을 팔던 때를 지금도 생각한다. 지금은 도시의 안전을 꿈꾼다. 40세 이후에는 어려운 이웃의 미래를 함께 꿈꾸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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