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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52>-진익송의 예술세계

우리가 매일 수차례 출입하는 문은 그의 예술적 사유의 근원으로서, 그에게는 감성과 사유의 내공을 심안(心眼)으로 헤아릴 수 있는 미적 혜안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에 그가 표현한 문은 사유의 문이자 또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의 문이며,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현실과 함께 하는 소통의 문이자 사랑의 문이라 하겠다.

두드려라 ‘門’ … 소통하라 ‘세상’

 

얼마 전에 서울의 어느 예식장에서 오랜만에 진익송을 만났다. 과묵한 듯하면서도 신사다운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그의 작업을 십여 년 전에 처음으로 접했었는데, 그의 기품만큼이나 묵직하고 육중함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는 가장 현대적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면서도 한국 미술계의 교조로부터 몇 발 떨어져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묵묵하고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진익송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면서 작가로서의 행보의 날을 또렷하게 세워 온,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 땅에서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미국 펄크럼(Fulcrum)화랑과 6년여 동안이나 전속 작가로 활동하였고, 영국 문화원의 연구 장학금 수혜자로도 선정되었다. 현재 뉴욕에서 무상으로 작업 공간을 얻어 일 년 중의 절반을 그곳에 머물며 작업한다.

그가 한국에 있을 때는 속세의 번잡함을 피해 사유하며 수행하는 구도자와도 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가능하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작업에 정진했다. 그러기에 작업 공간에 틀어박혀 여러 재료들을 만지며 생각에 잠기고 또 감각의 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구현시키는 그의 문(門)을 통한 작업은 깊은 인간애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우주 자연의 조화와 함께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고뇌어린 삶을 미적 대상으로 통찰하였고, 이를 문(門)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매일 수차례 출입하는 문은 그의 예술적 사유의 근원으로서, 그에게는 감성과 사유의 내공을 심안(心眼)으로 헤아릴 수 있는 미적 혜안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에 그가 표현한 문은 사유의 문이자 또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의 문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현실과 함께 하는 소통의 문이자 사랑의 문이라 하겠다.

진익송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그의 예술가적 정열과 더불어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어필하였다. 그는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의 집약지인 미국의 소호(Soho)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낮에 일해서 번 돈으로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큰 행복이자 추억거리였다. 나무가 크면 그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큰 것처럼, 뉴욕은 진익송에게 예술가의 꿈을 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많은 작품을 하였고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생활의 다양함만큼이나 많은 것을 소화하고 사유할 수 있는 예술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한국인으로서의 미적 감성을 뉴욕의 예술과 융화시켜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한지를 바른 문이 저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사로잡았구요. 한지를 바른 창호지 문은 참으로 신기하고 좋았거든요. 한지의 얇은 종이 한 장은 안과 밖을 확연히 구분시켜주잖아요.

 

 

우리의 문창살은 문을 테마로 한 제 작품의 바탕이라 할 수 있지요.” 진익송은 얇고 하얀 창호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가 이루어지는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창작하는 어떠한 문이든지 그 밑바탕에는, 자연스럽고 단아하며 은은한 떨림의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창호지의 보드라운 숨결이 깔려있다.

그의 작품에는 독일이나 미국 혹은 영국이나 에디오피아의 문 등등 다양한 나라의 문이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국의 문창살로부터 신선한 영감을 얻은 한국의 예술정신과 한국미의 독특함이 예외 없이 흐른다. 따라서 그가 한국의 문창살로부터 미적인 영감을 얻은 이후에는 어느 나라의 문을 소재로 사용하든지 예술적 공감대를 얻고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여러 문들은 그 이미지가 각기 다를 뿐 아니라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이 세상 온갖 것들이 다다를 수 있고 포용되며 통과될 수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것인 듯하다. 말하자면 알파요 오메가이자 확산과 환원의 결정체라 생각된다. 그의 문은 문일 수도 있고 문이 아닐 수도 있는 마음의 문이자 영원히 존재하는 본유 그 자체로서의 문인 것이다.

 

문은 문이되 대도(大道)의 문으로서, 여기에는 우주 자연의 향기와 사랑의 결정체가 은은하게 스며있다. 그러기에 욕망의 문이 될 수도 있고 용서의 문이 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성공의 문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의 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청년의 힘을 담은 문이 될 수도 있고 유아기의 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초유의 문이 될 수도 있고 본유의 문이 될 수도 있다. 이 단순한 문을 통해 우주 자연의 섭리와 세계 질서의 심오함 및 인간 삶의 실체가 함께 하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진익송의 작업실은 시골 아이들이 소에게 꼴을 먹이러 올 것만 같은 곳에 홀로 덩그렇게 자리하고 있어서 조용하고 서정적이며 편해보였다. 반면에 작업실 내부는 제작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 강철이 뒤틀리고 여러 너트들이 하나가 되거나 흩어지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평면이나 공간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으며, 그의 손에서 새로운 한국미의 세계가 창출되고 있었다.

그는 필자와 만나던 날에 마침 청주의 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그의 자동차에 동승하여, 두 곳의 전시 공간에서 동시에 열리는 대규모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2년여에 걸쳐서 2003년 무렵에 만들어졌다는 묵중한 느낌의 대작 한 점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너무 무거워서 이동시키기 불편하여 작업실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용서의 문’이라는 작품이 드디어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다양한 너트들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며 더욱 정제된 문의 엑기스가 하나의 기운으로 자리매김한 느낌 때문에 이상한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창호지의 깊은 맛과도 같은 은근한 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쪽 전시장에서는 진익송의 작품들 중에서 보기 드물게 작은, 예쁘고 다양한 손목시계들이 다양한 형태로 결합되어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다양한 이미지를 마음껏 확산시키고 환원시키며 주무르는 듯한 그의 예술적인 끼가 텁텁한 막걸리처럼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글 = 장준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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