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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영화 속 ‘킹 메이커’ 이야기

정조 대한 홍국영 충심과 일치
진정한 킹메이커 자세 되새겨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편의 작품에서 감독들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기승전결 구도 속에서 창조해 나가는 하나의 세계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고, 그 과정에서 던져지는 삶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들이 피부에 와닿기 때문이다. 물론 아름다운 배우들, 진기한 풍광과 같은 무대장치들은 덤으로 받는 선물이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 폭등, 솟구치는 물가에 쇠고기 파동 등으로 국민 모두가 어수선하고 힘들어 하는 이 때에, 한가하게 웬 영화 타령? 하고 반문하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선출된 대통령의 인기가 불과 취임 100일 만에 20%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작년 12월 대선이 치러지던 무렵 보았던 영화 두 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의 치정 후반부를 그린 ‘골든에이지’와 ‘올 더 킹즈맨’이라는 영화다. ‘골든에이지’는 10년 전 개봉돼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엘리자베스 1세’의 후속편으로 왕권을 안정시킨 엘리자베스 여왕이 ‘위대한 영국’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때마침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정조 대왕의 열풍 속에, 시대적으로는 200년 가까운 차이를 두고 살다 갔지만, 두 왕의 왕위계승, 개혁성,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는 노력 등 여러 가지 점에서 닮은 꼴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올 더 킹즈맨은 우리나라에서는 흥행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지만 숀 펜, 주드 로, 케이트 윈슬렛, 안소니 홉킨스 등 막강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 대결로 매니아들에게는 상당히 어필했다.

나는 오늘 이 두 편의 영화에 나오는 ‘킹’ 보다는 ‘킹즈맨’, 즉 킹 메이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정조 대왕이 그러했듯이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왕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킹 메이커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정조 대왕에게 홍국영이 있었다면,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월싱엄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미화된 측면도 있지만, 홍국영은 호가호위하며 사적인 욕심을 챙기다가 권력을 장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조의 내침을 받고 불운하게 죽는다. 월싱엄의 탁월성은 무엇보다 정보파악능력에 있다. 반대파의 침실 안까지 자기 사람을 심어 놓고, 적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여왕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않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충성을 다한다. 여왕의 성공을 만든 진정한 킹메이커다.

올 더 킹즈맨은 현대 정치에서 킹메이커들의 역할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윌리 스탁은 청렴한 지방 공무원으로서 학교 건설 입찰 비리를 고발해 유명세를 얻게 되지만, 내부 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 직장을 잃는다. 때 마침 주지사 선거철이 다가오고, 정치판과는 전혀 무관했던 스탁에게 한 사람이 찾아 와 주지사 선거에 나가라고 꼬드긴다. 순진했던 스탁은 그 말에 설득당해 출마하지만 유세 도중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되고 결국 선거에 승리하여 주지사가 되기까지가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스탁은 주지사가 되기 위해 여러 부류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데, 심지어는 권모술수와 부패성 때문에 자신이 경멸하던 자까지도 참모로 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한순간, 원하는 것을 얻은 후부터 실제 문제는 시작된다. 부패한 권력층을 처단하고 시민을 위한 주지사가 되겠다던 열정과 패기, 정의에 불타던 순수한 스탁은 어려운 정치 환경에 부딪히고, 권력의 맛에 물들어 가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킹메이커들 중에는 스탁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는 사람도 생기고, 제 잇속을 챙기는 사람도 생긴다. 영화는 주인공 윌리 스탁이 엘리트 이상주의자인 아담 스탠톤에게 암살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사람은 스탁이 그토록 경멸했던 부지사 더피라는 점에서 감독이 진정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의 비정함, 아니면 정치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 어찌됐던 요즘의 시국을 보며 진정한 킹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성공한 킹이 있기 까지 킹메이커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최연혜<한국철도대학장,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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