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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진정한 보스의 카리스마

 

노우지독(老牛砥犢)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이다. 지독(砥犢)이란 말은 핥을지(砥), 송아지독(犢)자로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조조 휘하에 주부(主簿)라는 벼슬을 가진 양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고 지혜로웠는지 조조마저 내심 불안해 할 정도로 전략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양수가 없이는 어떠한 전략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꼭 필요한 인물이었지만 그럴수록 조조는 양수를 견제하면서 경계심을 풀 수 없는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조조가 촉한의 유비와 한중(漢中)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할 때 전세가 불리한 것을 감지한 조조는 전면전을 벌일 것인가, 철군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조조는 막료들에게 계륵(鷄肋)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막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모르고 있었지만 양수만이 그 명령을 듣고 갑자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막료들이 양수에게 그 연유를 묻자 양수가 “계륵이란 본래 먹을것이 없어서 먹기는 뭐하지만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까운 음식이오.

 

주공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마 지금 이 한중성(漢中城)이 그리 쓸모있는 땅이 아니니 퇴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 같소이다.”라고 말했다. 양수의 해석은 “닭의 갈비는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래도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이곳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대단한 땅이 아니라는 뜻이니 버리고 돌아갈 결정이 내릴 것이다.” 라는 것이다. 결국 양수의 생각이 적중해서 다음날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조조는 이 일로 자신의 의중을 꿰뚤어 본 양수의 총명함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철수 명령을 내리기 전에 군사들의 마음을 교란시켰다는 구실을 내세워 양수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만다. 만약 조조가 양수라는 최고의 지략가를 끝까지 신임했더라면 유비는 결코 조조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양수가 참수 당한 후 조조는 양수의 아버지 양포를 만나게 되는데 모습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왜 그리 모습이 파리하고 해쓱하냐?”고 묻는다. 그때 양포는 “선견지명이 없어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해 죄를 짓게 했습니다. 아들이 죽고나니 마치 늙은 어미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처럼 어버이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해쓱해졌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노우지독인데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사랑으로 부모가 자녀를 아끼고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아무리 못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이다. 아무리 천하의 역적질을 했어도 어미소는 송아지를 핥을 뿐이다. 부모에게 자식의 허물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조조는 노우지독하는 양포를 보면서 “내가 왜 충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였는가”를 외치며 후회했지만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천하의 양수가 참수 당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라도 조조 곁에 있으려 하지 않았고 하나 둘씩 등을 돌리는 부하들이 늘어나면서 조조는 스스로 와해되는 비극을 맛보아야만 했었다.

 

양수를 죽인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믿고 따르던 사람조차도 보호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보스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헤리트루먼의 좌우명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였다. 어떠한 경우라도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법이 없었고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을 때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고 한다. 수레를 뒤에서 미는 자를 추거자(推車子)라고 부른다. 자신의 안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심 없이 수레가 비탈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추거자들이 많을 때 아무리 태산준령이라 한들 넘지 못할 곳이 있을까?

 

건전한 보스를 만나면 단순히 금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회와 변화다. 이것 때문에 진정한 보스를 원하는 것이고 그런 보스를 열망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누가 희생적으로 보스를 위해 충성할 것인가. 누가 할일 없이 남의 뒤만 밀어주는 추거자로 살겠는가? 가까이 있는 사람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먼데 있는 사람을 내사람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노우지독에서 나오는 법이다. 허물이 있으면 허물을 감싸주고 핥아 줄 때 목숨을 거는 사람이 줄을 서는 법이다. 이용가치를 따지려는 순간 부하는 새로운 기회를 위해 등을 돌리고 떠나가 버린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허물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지도자가 진정한 보스다. 명분과 의리를 지키다가 토사구팽 당하는 정치의 비정함을 하도 많이 보아서 해보는 소리다.

용인시의회 의원 박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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