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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무학대사란 유명한 고승을 스승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유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억불숭유 정책을 내세워 불교를 탄압했던 인물이다. 어느날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먹성 좋게 식사를 하는 무학대사를 보며 이성계가 껄껄 웃으며 “대사는 음식을 꼭 돼지같이 먹는 구려”하며 농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들은 무학은 “소승이 보기에 장군은 꼭 부처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이성계가 “나는 대사를 보고 돼지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나를 보고 부처라고 부릅니까”라고 묻는다.

무학이 말하기를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 인물에 대하여 참모습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겪어 보지 않고는 다 알수가 없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분을 쌓았다고 해서 그 마음속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돼지로 보든 부처로 보든 각자의 판단이 있겠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든지 부처를 돼지로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고사성어 중에 동가지구(東家之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진가를 모르거나 항상 가까이 있어서 그 사람의 참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동가는 동쪽에 있는 이웃집을 가리키고, 구는 공자의 이름이다. 동쪽 이웃집에 사는 공자라는 뜻이다. 공자의 이웃집에 한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공자가 세계4대 성인의 한 사람인줄 전혀 모르고 단순히 동쪽집에 사는 사람으로 여기면서 항상 공자를 ‘동쪽집에 사는 구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부처를 돼지로 여겼던 이성계의 일화에서 보듯이 바로 주변 인물이 대인물인줄 모르고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인물로 보아 넘기는 일이 허다하다. 지천지인 쯤으로 생각하여 무시하기도 한다.

흔히 삼국지를 두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처세술, 또한 인간학의 진수가 담겨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중국 삼국시대는 낡은 권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권력이나 사회규범, 가치관에 있어 과도기적인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울하고 힘든 현실에서 갈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만큼 가능성이 많은 시기도 없다.

하찮은 필부로 태어나도 왕후장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황제의 지위도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룰 수 있었다. 영웅과 영웅이 격돌하고 그 속에서 참모들의 지략이 감탄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 중에서도 유비는 한마디로 말하면 인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는 점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이었다.

 

유비는 임기응변과 권모에서 조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나이 50이 될 때까지 이렇다할 자기의 세력도 형성하지 못하고 조조에게 쫒기면서 더부살이를 하였는데, 그는 나이만 먹고 이루어 놓은 것이 없이 허송세월하다 살만찌는 자신을 보며 비육지탄이라고 한탄하였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촉한 왕조를 건립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까? 제갈공명, 관우, 장비, 조자룡을 위시해 그의 부하가 모두 유비를 위하여 분골쇄신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부하들에게 이 분을 위해서는 목숨을 던져도 아깝지 않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적 매력이 충분히 있었고 이것이 유비가 갖고 있는 최대의 정치적 자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비는 상대가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될 때는 기꺼이 자신을 낮춘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갈 때 그의 나이 47세였고 공명은 27세 청년이었다. 유비가 불우하긴 해도 천군만마를 거느린 역전용사였고 공명은 백면서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공명을 간절히 얻고자 했다. 여기서 삼고초려가 이루어지고 천하를 도모하게 된다. 공명은 유비의 인간적인 매력에 감격해 출사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이 미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자신의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주신 그 지극한 정성과 인품에 감격해 목숨을 던지기로 결심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유비의 이러한 인품이 부하를 감동시켰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을 유비의 부하들은 잘 보여 주었다. 조조가 보잘 것 없는 유비를 경계하고 그토록 죽이고자 한 것은 이런 인품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조조와 같은 권모가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파악하지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유비 같은 인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게 만들어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문제는 상대를 돼지로 보느냐, 부처로 보느냐에 달려있다.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일 것이고, 모든 사람을 표(票)로 보는 정치인이 있다면 천하의 공자를 곁에 두고도 동쪽집에 사는 구씨 아저씨 정도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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