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칼럼] 닮은 꼴 공화국의 비애
[편집국장칼럼] 닮은 꼴 공화국의 비애
  • 경기신문
  • 승인 2008.07.02 19:32
  • 댓글 0
  • 전자신문  22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찬형<편집국장>
‘발가락이 닮았다.’

1932년 ‘동광(東光)’지(誌)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의사인 ‘나’에 의해 서술되지만 작품의 주인공은 생식불능자인 ‘M’이다.

그는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을 숨기고 결혼을 한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M은 자신이 아내를 속이고 결혼했다는 원죄(原罪)를 안고 있다. 이때문에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책망할 수도 없고 아내의 임신을 받아 들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M은 자신을 합리화할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자신의 발가락과 아들의 발가락이 닮았다”는 구실로 자신을 속인다.

파국으로 치닫는 국회

마지막 회기일이 4일인데도 한달이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식물국회’와 의장단 자리싸움에 매몰돼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경기도의회를 보면 ‘발가락이 닮았다’는 소설이 떠오른다.

M과 그의 아내처럼 서로를 탓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모습에 국민들은 비극을 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2일 “촛불정국이 꺼져 가고 있는데 일부 진보 성향의 종교인 중심으로 꺼져가는 촛불을 살리려 한다”며 정부의 엄정 대응을 거듭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런 상황이) 어쩌면 5년 내내 계속될 지도 모른다”면서 “정부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7월4일이 되면 제헌 60년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이 없는 국회, 식물국회가 또 탄생하게 된다”면서 “국회의원의 등원, 개원 거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행위고 선진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정부와 여당이 야당을 적당히 국회로 끌어들여서 들러리로 쓰겠다는 것은 큰 오판”이라며 가축전염병 예방법을 제대로 고치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진짜로 국회에 걸린 빗장을 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이 단독등원을 하겠다는 것은 행정부 감시와 견제라는 의회 역할을 포기하고 정부의 선봉대 역할을 하겠다는 말”이라면서 “이제 제 5공화국을 넘어 유신독재 시절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M과 그의 아내는 언제 가슴을 열고 화해할 수 있을까. 양당이 써가는 ‘소설’을 읽는 독자(국민)들이 ‘반전’과 ‘클라이막스’를 기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국회 닮은 경기도의회

경기도의회도 국회처럼 닮은 꼴이 되고 말았다. 12석을 차지한 통합민주당 도의원들이 부의장 2석중 1자리와 9석의 상임위원장 가운데 3석의 배분을 요구하며 지난 달 27일부터 2일까지 닷새째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을 봉쇄하면서 1일엔 제233회 1차 정례회가 열리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도민들은 물론이고 공직자들도 “국회나 도의회나 한치도 양보없이 닮은 꼴을 연출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일부에서는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모두 정당공천제를 없애고 의정비를 대폭 삭감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과격한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양태흥 의장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잠겨진 본회의장 문틈사이로 교섭을 벌였지만 소득은 없었다.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은 2일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출입문을 잠근채 농성을 계속하고 있어 본회의는 이틀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국회와 쏙 빼닮은 형국이다. 김동인이 국회나 경기도의회를 소설 주제로 삼았다면 한나라당은 M이고 통합민주당은 M의 아내인 셈이다.

빈사상태의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쇠고기 수입과 고유가, 고물가 등 산적한 현안에 무기력한 한나라당을 통합민주당은 ‘발기부전’으로 탓하고 있다.

‘잠자리’(18대 국회 등원)를 거부하는 통합민주당은 한나라당에겐 자유선진당 등 다른 사내(야당)에게만 정을 주는 야속한 아내로 비쳐질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책임지자

지난 2002년 월드컵 경기가 치러져 온나라가 들썩이던 해….

그 해 6월 13일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야 했다.그리고 불평등한 SOFA(한미행정협정)을 개정하라는 ‘촛불’이 들불 처럼 전국을 뒤덮었다. 심미선, 신효순 양 사망 6주기를 맞는 올해 시민단체 회원들은 물론이고 직장인, 공무원, 심지어 중학생들까지 촛불을 들었다.

대통령이 쇠고기 고시와 고유가, 고물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국의 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인 함석헌 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을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역사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 한다.

“중요한 일을 맡은 한 사람이 잘못을 되풀이 해서는 안되고 한 시대의 실패는 그 시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