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초대석] 김남실 비쥬얼팩토리 대표
[CEO초대석] 김남실 비쥬얼팩토리 대표
  • 이미영 기자
  • 승인 2008.07.08 19:31
  • 댓글 0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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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과 실패, 두려운 존재 아니다

과거와 미래, 바늘과 컴퓨터, 수작업과 기계 작업 등 상반된 분야의 두 사업.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이 사업에 공통분모가 있다.

이 두 사업을 모두 이끌고 있는 비쥬얼팩토리(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김난실 대표. 지난해까지 전통수공예품 전문업체인 상방원의 대표였던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사명을 비쥬얼팩토리로 개명해 영화, 방송, CF와 애니메이션 등을 기획, 제작, 생산하는 전문 CGI 프로덕션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했다.

전통공예품에서 전문 CGI프로덕션으로 180도 선회한 김 대표. 김 대표는 이런 사업확대에 대해 창업 당시 생각했던 첫번째 아이템을 다시 시작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김대표는 “현재 비쥬얼팩토리가 하고 있는 업무는 첫번째 창업 아이템”이라며 “사업계획서까지 작성했다가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던 사업”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지만 거절당했던 이 아이템이 지금, 사업의 또다른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CEO로서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강조하는 김난실 대표. 자신의 꿈을 현실세계에 펼치고 있는 김난실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 김남실 비쥬얼팩토리 대표

수백번 당한 거절, 더이상 거절이 두렵지 않다

거절과 실패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김난실 대표에게 거절과 실패는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김난실 대표는 졸업 후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우기 위해 의류회사 취업을 노렸다.

100통이 넘는 이력서를 돌렸고 면접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번번히 김 대표에게 돌아온 것은 ‘낙방’이라는 거절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 의상디자이너가 되기위해서는 66사이즈의 피팅 모델이 가능해야 했다”며 “키가 작은 나는 항상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디자인은 너무 하고 싶은데 키를 보지 않는 곳을 찾아야 했다”며 “그래서 컴퓨터를 이용한 웹디자인 쪽 일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1998년 시작한 웹디자인 일은 1999년 직장생활과 함께 프리랜서로도 뛰면서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 외 기업홈피 웹디자인을 하는 등 많은 작업을 수행했다. 결혼 이 후 회사는 퇴사했지만 여전히 김 대표는 그래픽디자인과 관련해 강의 활동을 지속했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무조건 부딪혀라

웹디자인 관련 일을 계속하던 김 대표는 어느 순간부터 이 분야 단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기존 웹디자인으로는 한계가 왔음을 느낀 김 대표는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의 1년 기숙과정에 등록해 3D 디자인과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배웠다. 결혼 후 남편과 아이가 있었지만 김 대표는 아이를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과감히 배움을 택했다.

과정 졸업 후 김 대표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의 창업 지원을 받기 위해 현재 비쥬얼 팩토리의 아이템으로 사업계획서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김 대표는 “그 당시 이 아이템에 대해서는 사업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그래서 다시 도전한 아이템이 전통수공예품 전문점인 상방원”이라고 밝혔다. 2004년 7월 김 대표는 전통수공예품 전문점 상방원의 사업계획서를 통해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 창업보육센터에서 창업을 했다.

하지만 창업 후 6개월 동안 김 대표의 사업 실적은 8천원에 불과했다. 디자인 감각이 있었던 김 대표는 제품에 대해서는 자신있었지만 이 물건을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김 대표는 무조건 부딪혀 봐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지원, 전시회에 참가했다. 김 대표는 “전시회 참가를 통해 20개의 거래처가 생겼다”며 “어느정도 매출이 생겼지만 원하던 수준은 아니였다”고 말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깨닫다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 창업보육센터에서 사업을 시작한 김 대표는 1년후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 내 창업보육센터로 사업처를 옮겼다.

김 대표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 내 창업보육센터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이제 막 시작하는 예비창업자들이 많았다”며 “내가 배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시작한 선배CEO라는 생각에 사업처를 옮겼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어 “여성경제인들의 모임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나가 무조건 회사와 아이템에 대해 설명했다”며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하면 할수록 용기가 생겼고 인맥도 함께 늘어갔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해외 전시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김 대표는 “성과는 따지지 않고 기관에서 지원해 주는 것은 무조건 다했다”며 “이런 것들이 바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 모여 나중에 매출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프랑스 등 해외 주문도 늘었고 드라마와 영화 황진이와 드라마 태왕사신기, 영화 궁녀 등 누구나 알 법한 드라마와 영화 소품 제작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매출이 꾸준히 늘어났지만 순수익을 따져보면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업종 전환, 새로운 기회가 되다

새로운 출구를 찾던 김 대표에게 경기도립전문직업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찾아왔다. 같에 3D와 관련된 사업을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생각 저 밑, 깊숙히 묻어놨던 김 대표의 첫번째 사업 아이템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2006년 8월 컴퓨터그래픽 관련 작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한 기업이 제품에 대한 금형을 뜨기 전에 그 제품이 어떻게 나올지 CG작업을 통해 미리 구현할 수 있다”며 “이외에도 방송국 프로그램에 삽입되는 3D 애니메이션 작업 등을 했다”고 말했다. 기존 전통수공예품인 상방원을 운영하면서 친구와 둘이서 시작한 컴퓨터 그래픽 분야가 예상 외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김 대표는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비쥬얼 팩토리가 올해 이미 지난해 매출의 2배를 달성하는 등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며 “업종 전환을 통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주)시현과 MOU를 체결한 비쥬얼 팩토리는 혼합현실기반의 무선 인터렉티브 콘텐츠 개발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김 대표는 “비쥬얼 팩토리의 미래는 가상과 현실이 함께 있는 혼합현실 구현”이라며 “이 기술은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가 안된만큼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어 “비쥬얼 팩토리의 경우 (주)시현과 MOU를 체결해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무선네트워킹이 가능한 연구인력을 갖췄다”며 “이를 위해 조만간 연구소도 설립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계획하는 혼합현실이 구현된다면 집에서도 학교와 똑같은 분위기의 가상공간에서 인터넷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후 집에 들아가 편하게 잔 적이 거의 없다”며 “항상 사무실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잠을 자다보니 어느새 별명이 ‘돗자리’가 됐다”고 웃었다. 그는 이어 “실패를 두려워 하면 안된다”며 “사업을 하는데 있어 무조건 가는 돈키호테 식의 무대포 정신도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상현실을 현실세계에 새롭게 구현하는 것처럼 자신의 꿈을 현실에 구현하는 김난실 대표의 열정이 있어 비쥬얼 팩토리의 미래가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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