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시평] 무대 뒤 이야기들

 

세월은 무심하여 벌써 한여름의 절정기 그런데 쇠고기 파동, 독도문제, 고유가에 고물가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무덥고 지리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여늬 때와는 달리 국민들의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마저 시들한 상황이다.

 

알뜰한 주부들은 고기 한 칼 사기가 망설여질 만큼 모두 어려운데 생활과 예술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 더러 짜증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오늘은 무대와 얽힌 야화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즐거운 기억으로 연극공연 최초, 최후의 암표상에 관한 얘기이다. 1976년 9월 현 서울시의회 건물인 세종회관 별관에서 이정길, 황정아가 주연한 휘가로의 결혼이 시작되었다. 극단 실험극장은 1969년 초연 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경험이 있어 기대가 컸다.

 

역시 공연 첫 날 개막 두어 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늘어선 관객의 행렬을 정리하느라 기획팀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입석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의 안전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튿날에는 일찌감치 동대문운동장의 암표상이 나타나 정가대로 표를 좀 빼달라는 사정사정에 20장인가를 정가에 팔았다고 한다. 간혹 인기 있는 영화나 야구가 암표상의 영업종목에 낄 수 있는데 연극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유용환의 ‘무대 뒤에 남은 이야기들’에 실려 있다. 아직 예약문화가 일반화 되지 못했던 그리고 연극이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그래서 앞으로는 영원히 불가능한 사건이다.

연출가 이진순 선생은 이해랑 선생과 쌍벽을 이뤘던 연극계의 거목이다.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감각이 남다른 분으로 작업을 함께 해보지 않은 후배 연극인들도 그분의 일화 한토막쯤 모르는 이가 없다. 단원들과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로 “너희들 마음껏 시켜 먹으라우.” 인심 한 번 크게 쓰시고 정작 본인은 “여기 자장면 하나”를 주문하신 일화로 특히 유명한 분이다. 선생께서 자장면을 드시는데 감히 다른 요리를 시킬 만큼 간 큰 단원들은 없었다.

자장면에 얽힌 이야기 하나 더-술 좋아하는 연극인들이 돈은 없는데 술이 먹고 싶으면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놓고 가위로 면을 잘라 안주로 삼던 때가 종종 있었다.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연극연습 두어 달 동안 식사는 오직 자장면 한 가지, 모처럼 예매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대박의 예감이 들 때 설렁탕을 시키면 전 단원들이 환호작약하던 모습이 선하다.

대부분의 무대 뒤안길의 이야기는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악몽처럼 생각하기 조차 끔찍한 경우도 있다. 권총 자살을 하려는데 화약이 터지지 않자 배우가 입으로 “타앙”하고 쓰러져 객석이 웃음바다가 되는 것은 시쳇말로 일도 아니다.

내가 목격한 무대 사고 중 가장 큰 것은 장충동 국립극장 개관 공연 때의 일이다. 개막작품은 당시 박 대통령이 가장 흠모하는 성웅 이순신이었다. 대통령과 3부 요인 등 1천500명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공연은 물흐르듯 진행되었다.

 

마지막 이순신 장군이 순절하는 신은 국립극장의 돌출, 회전 무대 등 최신 메커니즘이 총동원되어 이순신 장군이 무대 중앙에 올 때 총을 맞도록 연출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전무대가 반쯤 돌다가 멈추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이 관람해서가 아니라 민족문화예술의 요람으로 새 출발을 하는 국립극장 개관공연이기에 수 십 번 연습할 때는 아무 일도 없던 기계가 작동을 멈춘 것이다.

 

기계실에서 역회전시켜 다시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순신을 맡은 장민호 선생은 통곡이라도 했지만 스텝들은 유구무언이었다.

또 하나는 2002년 월드컵대회 전야제 때의 일이다. 조수미, 조용필, 김덕수 등 다시 구성하기 힘든 호화 캐스트가 출연하고 전 세계 여러 나라에 TV로 생중계되는 막중한 공연을 시작하려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작은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대 위에 올라 자리를 잡기도 전에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단원들은 주섬주섬 악기를 들고 무대를 내려오고 중계 카메라는 애꿎은 여의도 야경을 훑으며 몇 분을 지내고 나서야 다른 순서로 시작해야 했다. 단원들은 폭우 속의 연주를 거부할 수 있겠으나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일생에 이보다 난감한 경우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안산시로서는 극히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던 중 무대 사고가 발생했다. 동영상을 상영하는데 음성이 안 나오는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급히 노트북을 바꿔보았지만 역시 소리가 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다른 순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사전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 있었다. 주최측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하느라 행사 30분 전에 겨우 소스를 전달해주어 전체 체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는 VIP 증후군으로 핑계를 삼을 수도 있지만 이런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기에 더 안타깝다. 책임은 물론 내가 지겠다고 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