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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경청’ 아름다운 보수와 진보의 조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짜증나는 하루하루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고유가로 인하여 악화 일로에 있는 나라 안팎의 경제사정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금강산 여행객에 대한 북한군의 총격사건, 터무니없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은 여름날의 짜증을 더하고 있다. 그것보다도 참여정부 이래 그토록 극심했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싸움이 격렬하게 재연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야말로 우리 국민들을 짜증의 수위를 넘어서 아예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대서(大暑)인 지난 22일에도 광화문 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울 광장에서는 촛불을 든 시위대 앞에서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찬송가를 부르며 좌파 척결을 위한 집회를 벌이고 있는 보수 종교단체들의 모습을 본다.

촛불 시위는 예상을 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반정부운동으로 격화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해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수정권에 대한 진보세력의 전방위 공격이 더욱 많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벌써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정부의 모든 정책 분야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변증법적으로 볼 때 사회 내의 갈등 구조는 오히려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진보의 싸움은 변증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선 것 같다.

이제는 아름다운 보수와 진보를 말할 때가 되었다. 인간은 오류 가능적 존재이다. 틀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상대방이 틀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칼 포퍼’는 비판적 검토와 토론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제거할 수 있는 사회를 일컬어 ‘열린사회’라고 불렀고, 이것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를 ‘열린사회의 적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내가 옳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끊임없이 비판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조건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한다고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가 있는 법이다.

이렇듯 우리들의 현실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오류 가능성과 진리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진면목을 읽을 수 있다. 보수는 진리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사회를 유지하고자 지키는 데에 방점을 찍는다면, 진보는 오류 가능성의 입장에 서서 진리에 의한 사회 변화를 강조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진리를 지키는 것이 보수요, 진리로 인해 사회가 변화되는 것이 진보이다.

그러므로 보수에도 진리가 있고 진보에도 진리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싸움을 들여다보면 서로가 상대방에는 진리가 없다고 우기면서 싸움을 하는 것 같다. 서로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고, 자기 말만 고집하는 보수와 진보의 모습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이다.

아름다운 보수와 진보의 핵심은 말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데 있다. 경청은 상대방을 귀한 존재로 여기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여 말의 가치를 인정하고 말하는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경청의 본질이다. 이와 같은 경청은 이미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사전에 학교 현장에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습득되어지고 내면화되어질 때 가능하다. 혹자는 요즘 촛불집회 현장을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육 장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이다. 한쪽 편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듣는 것은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오히려 교조주의화되는 것이다.

보수를 인정하는 진보가 아름답다. 진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보수가 아름답다. 지금은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남의 말을 듣는 법을 가르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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