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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범행에 무방비 상태인 교문

 

입학서류는 행정실에서 접수한다. 업무처리를 독려하거나 지시사항 전달회의를 주로 하는 교무실이 없다. 행정실에서는 ‘학부모편람(Parent Handbook)’을 내준다. 각종 규칙과 벌칙은 물론 학교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자료다. 학생들은 그 규칙들을 꼭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교장은 당장 학부모를 부른다.

교장은 권위적이지 않다. 훈시나 인사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다만 36가지 교칙에 따른 벌칙 적용에는 단호하다. 두 학생이 싸우면 대질신문 후 사건보고서 작성을 통해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학부모에게 통보한다. 사안에 따라 경고장 혹은 사건경위서 발부와 학부모 면담, 제적·퇴교 조치가 이루어진다. 사건경위서가 발부되면 예를 들어 일정기간 학생의 쉬는 시간을 박탈해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

교사들도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가 아니다. 학생이 규칙을 위반하거나 주의집중을 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학부모에게 알린다. 학부모들은 ‘학부모 지원모임(Parent Support Group)’에서 자녀교육 정보를 얻고 문제해결 방안을 찾는다.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시간과 장소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교문을 열기 전에 등교하거나 방과 후에 남아있는 학생은 교내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에 맡기고 그 시간 만큼 비용을 청구한다. 방과 후에 학생을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미리 등록돼 있어야 한다. 쉬는 시간의 놀이터 감독 직원이 따로 있고, 교문을 열기 전이나 방과 후에는 놀이터에서 놀 수 없다.

식당에는 점심시간 감독직원이 따로 있다. 또 학교마다 담당경찰관이 있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수학여행도 동행한다. 학부모가 동행하지 않으면 야간활동에 참여할 수가 없다. 수업 중에는 학교에 전화를 할 수 없고, 교사는 의사가 아니므로 아픈 아이를 등교시킬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운영되는 학교가 없다. 어느 기자가 시애틀 근교 숄라인 교육구의 한 초등학교에 자녀를 취학시켰던 경험을 쓴 책의 내용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서 교사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라고 하면 당연히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는 학생의 모든 면에 대해 거의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학생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가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다. 공부를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는 학교는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어떤 행정가는 “장학은 교장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되 이것만은 지키라”며 지원행정의 우위를 강조한다.

차도에는 꼭 교사나 학부모 당번을 세워 안전지도를 하되, 학부모 당번은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 눈치껏 정해야 한다. 교사들은 쉬는 시간에 다음 시간 준비를 하면서도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모든 학생의 안전과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학교마다 1천명 안팎의 점심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위생과 영양에 민감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1학년 담임이 햄버거처럼 단일 메뉴도 아닌 국과 밥, 두세 가지 반찬을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 배식하려면 민원이나 언론의 질책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학교는 또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아무런 제약 없이 출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마치 천국이나 된 것처럼 어떤 학교는 담장을 다 걷어치우기도 했다. 하기야 폭력배가 침입해 난동을 부린다 해도 선뜻 나설 남교사도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경찰로 연결되는 핫라인도 없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는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한 ‘교원보호법(안)’을 입법 건의했다고 한다. 학교의 벽을 높인다는 우려도 있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학생을 보호할 수는 없다. 국회는 중요한 일로 늘 분주하지만 어느 의원이 단 하루만 학교가 어떻게 영위되고 있는지 관찰해보면 국민의 관심사가 바로 이런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 법안의 처리를 지켜볼 것이다. 결국은 교육이 국가 장래를 좌우한다는 것을, 번드레한 말로 강조하지 않고 훌륭한 정책으로써 인정하는 나라가 앞선 나라다. 교육도 마음이 편해야 잘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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