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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민주주의, 개인 주체성의 존중에서

 

두 돌을 막 지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시누이는 ‘언니, 언니’ 호들갑을 떨며 아이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한다.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경이와 감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사소한 행동과 말에 일희일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 나는 이런 놀라움과 호들갑의 정체가 ‘아이’를 아무 생각도 없는 그저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가 예상치 못한 얘기나 행동을 한 것이 놀랍고 경이로운 것이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똑같은 행동을 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이들은 어지간해서는 경이로움이나 놀라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최근의 상황들을 보면서 절감한다. 그나마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사랑과 이해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복한 충격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얼마 전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범불교도 대회 배후설을 주장해 논란이 되었다. 김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 글을 통해 “불교 승려들의 집단 시위에 배후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당국은 만전을 기하여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종류의 얘기를 너무도 많이 듣고 있다. 올 초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에도 ‘배후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고,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벌인 네티즌 24명에 대한 무더기 사법 처리, 촛불시위 주도 네티즌에게 구속영장 청구 뒤에도 ‘배후’ 논란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사고방식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촛불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한 네티즌은 ‘불특정 다수 누리꾼들에게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집회 일시, 장소 등을 알려줬다’는 이유가 구속영장 신청 사유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벌인 네티즌들은 대부분 카페와 관련 사이트 등에 광고를 낸 업체들의 리스트를 수십 회에 걸쳐 게재하고 네티즌들에게 항의 전화를 독려하는 글을 수백회 이상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내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배후’ 논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들 사건에서 보여준 정부나 사법당국이 가지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인식이 배후설과 같은 인식과 판단 아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면서 겪는 오류 중 하나가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몰이성적인 존재인데 누군가가 영향을 주면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와 사법당국, 김동길 교수까지 모두 유사한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부나 사법당국이 국민들을 ‘범불교도 대회를 개최하는 승려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은 무지몽매하기 때문에 사악한(?) 무리들의 선전이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비이성적인 존재들’ 정도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배후설이나 네티즌 구속 같은 이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그들은 ‘무지몽매’라는 표현보다는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들이라는 표현을 쓸 것이지만 말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인정과 존중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선진국에서 어린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어린 아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기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러한 자신의 의사를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성립될 수 없다. 네티즌들에 대한 구속을 두고 인권단체들이 “촛불시위 네티즌 구속은 민주주의를 구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사회의 지도층들과 정부, 사법당국은 제발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 국민들의 자율적인 주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감히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야기하면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이 무엇인지를 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장본인이 오히려 자신들이 될 수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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