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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미학] 2.박승모의 예술세계

뒤틀림속에 이르는 탄생

 

눈이 부실 정도로 햇빛이 맑은 날, 흐르는 시간을 가르치듯 몸 빛깔을 바꿔가는 들판의 곡식들은 햇볕을 받아 투명하게 눈부시다.

맑은 물 속 같은 들 한가운데를 지그재그로 가다보면 양평군 곡수리 산자락 밑에 자리 잡은 T자 모양의 긴 돔 형식의 조각가 박승모의 작업실이 눈에 들어온다.

작업장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건물 밖에서는 코트를 입은 여인상의 형상을 손질하는 사포질과 기계음이 공장을 방불케 한다.

낡은 작업복 차림으로 먼지구덩이에서 금방 나온 그이지만 반짝이는 눈과 환한 표정으로 맞이하는 박승모

 

작가를 대하니 예전 풋풋한 청년의 시절을 다시 보는 듯 변함이 없다.

사실 박 작가는 대학 시절을 함께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 진행 중인 그의 작품에 대한 태동을 곁에서 봐왔기 때문에 작업복 차림의 모습이 더없이 반갑게 느껴진다. 또한 즐비하게 진열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그간에 작품에 대한 열정과 수고가 얼마나 고된 시간이었을까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알루미늄 선이나 동(銅)선을 수없이 반복하여 감는, 지루하고 힘든 노동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하는 그 긴 과정 속에서 그가 지금의 삶과 작업이 나오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5년간의 인도 여행일 것이다.

 


대학 졸업(부산 동아대 조소과) 후 삶과 작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대학시절 잠시 다녀왔던 인도로 다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서 명상과 수행의 시간을 보내며 자아(에고)와 욕망의 실체와 씨름했고 결국 자아의 실체를 대면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이 결코 득도를 하거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 할 수 없겠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경험들로 인해 누구나 할 수 없는 힘들고 독특한 그의 작품세계가 형성되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그의 작품제작과정이 어떠한지를 들어보기로 하자.

한 예로 사물, 기성품, 인간을 모티브로 한 실제 존재하는 것들을 모델로 삼아 그 외형틀을 석고로 떠내고 다시 FRP(플라스틱 재료)로 원형을 제작한다. 다시 반복해서 FRP로 틀을 잡은 뒤 알루미늄 선을 감기 위해 표면을 사포를 이용해 매끈하게 굴곡이 없도록 다듬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야말로 수행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알루미늄 선 감기작업에 들어간다. 10cm정도씩 접착제를 원형 틀 위에 바르고 사물의 형태와 특징에 따라 0.2~8mm 굵기의 알루미늄 선을 선택해 촘촘히 감으며 30cm정도 감기면 접착제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 사이 다른 작업을 하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시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원형을 다 감게 되면 감겨져있는 알루미늄 선의 굵기 절반을 갈아낸다. 이는 빛의 반사로 인해 형태가 틀어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먼지를 제거하고 광을 내는 작업을 함으로써 마무리가 된다.

이러한 제작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의 작품을 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노동에 들인 긴 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찬사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 작업과정 속에서 특히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크게 두 가지로 답한다.

첫 번째는 처음에 선택되어진 사물, 기성품(objet)이 결과물과 많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이는 처음에 상상했던 형태와 달리 감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형태의 변형으로 인한 시각적 문제 해결이 맹점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작가는 가만히 두 손을 내밀어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손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손끝과 관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치료와 약을 복용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는 어느 발레리나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발레공연을 보고나서 우연찮게 그 발레리나의 발을 보게 되었는데... 나의 손이 많이 부끄러웠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업하는 과정에서의 힘든 것들은 수행하는 길이며 잡념이 없어서 좋다. 그런 무아의 상태야말로 내가 원했던 경지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박승모 작가는 결과물보다 작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간성을 두고 감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자아를 찾는 수행의 길이라는 것이다.

‘껍데기’-조각가 박승모의 작업 이야기를 들을 때 그가 말하는 첫 번째 언어였다.

기능을 상실한 의미에서의 사물, 그리고 인간, 형태만 피아노 일뿐 그 기능은 상실되었다. 형태만 사람일뿐 움직임도 생각도 없다. 그래서 ‘만듦’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형태를 틀로 떠서 재현 하는 것이다.

박승모의 작품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음의 차이, 가리기와 드러내기의 차이 등 관객으로 하여금 그 경계의 선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곳을 상상하게 하며 다시 탄생되어지는 것이다.

정해진 일정으로 해서 좀 더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10월 8일부터 서울 인사동의 Art Side에서 3번째 초대 개인전을 갖는 작가와의 재회를 기약해본다.

관객과 대화하는 그의 작품을 기대하며 영혼이 맑은 젊은 작가 박승모의 건강을 기원한다.

 

약  력
   
▲ 작가 박승모
1969년  부산 출생
1998년  부산 동아대학교 예술대 조소과 졸업
●주요 전시
2008  ALBEMARLE Summer Show/ Albemar 
      le갤러리, 런던, 영국
      Korea now/ 아트링크, 소더비, 이스라엘
      베이징 아트페어/ 베이징, 중국
2007  CIGE 2007, 베이징 아트페어/ 베이징, 중국
      공간을 치다(Lines in space)/ 경기도 미술관
      ACAF, 뉴욕 아트페어/ 뉴욕, 미국
      박승모 이재효 최태훈 전/ 마나스 아트센
      터, 경기도 양평
2006  CIGE 2006, 베이징 아트페어/ 베이징, 중국
      경기도 청년작가 초대전/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경기도 중견작가 초대전 및 회원전/ 여주
      상하이 아트페어/ 상하이, 중국
      3인 조각전/ 장은선갤러리
2005  CIGE 2005, 중국국제무역중심/ 베이징, 중국
      ‘감거나 혹은 감싸거나’ 박승모, 유재흥 2인 조각전/ EBS 스페이스
      박승모 조각전/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점.입.가.경/ 갤러리 이 함
      CIPA 아트페어/ 예술의전당
      제1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부문 특선/
      과천 현대미술관
2004  야외공간 프로젝트Ⅱ2004/ 세종문화회관
2003  한중미술교류 심포지움/ 여주 도자기엑스포
      MANIF9! 2003 서울국제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2002  1234567890 조각전/ 인사 갤러리 
2000  NANDAN 아트페스티발 참여/ 인도 캘커타
1999  남부 현대미술제/ 진주 문화회관
1998  부산 미술제/ 부산 문화회관
      동아 조각전/ 월드 갤러리
      남부 현대미술제/ 부산 문화회관     
1997  뉴코아 공모전 대상/ 경기도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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